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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火家人(풍화가인) 본문
주역의 괘들은 나름 이유가 있다.
주역의 순서를 나열하면서 아무렇게나 배치한 것이 아니다.
풍화가인괘는 지화명이괘의 다음에 있는 하괘의 7번째괘로
전체적인 괘의 순서는 37번째에 있는 괘로 풍화가인이란 괘명을
갖고 있다.
청춘 남녀가 이성을 알아 뜻이 맞아 혼기가 되어 결혼을 하게 되면
뇌풍항괘가 된다. 혼인을 하면 안정기가 되고 안정이 되었으니
당연히 모든것이 건장하게 준비가 되어 나아가서 왕성한 활동을
제기하다 마음이나 몸에 상처를 입게된다.
이럴 때 찾게 되는 것이 집이다.
37번째의 괘가 바로 풍화가인괘로 객지를 떠돌다 상처받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괘명이 가인이고 순서는
하괘에 있는 37번째다.
가인이란 그래로 읽으면 집사람이다.
여기서 집사람이란 아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의 구성원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각각의 역할을 다할 때 질서가 서고 절도가 있어서
만사에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傳]
家人 序卦 夷者 傷也 傷於外者 必反於家 故受之以家人
夫傷困於外則必反於內 家人所以次明夷也
家人者 家內之道 父子之親 夫婦之義 尊卑長幼之序 正倫理篤恩義家人之道也
家人은 서괘에 夷는 傷함이니, 밖에서 傷한 자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가인으로 받았다 하였다. 밖에서 傷하고 곤궁하면 반드시 안으로 돌아오니, 가인이 이 때문에 明夷의 다음이 된 것이다. 가인은 집안의 道이니, 부자의 친함과 부부의 義와 尊卑 長幼의 차례로 윤리를 바르게 하고 恩意를 돈독히 함이 家人의 道이다.
卦外巽內離 爲風自火出 火熾則風生 風生自火 自內而出也 自內而出 由家而[一无而字]及於外之象
괘가 밝은 巽이고 안은 離이니, 바람이 볼로부터 나옴이 되니, 불이 熾盛하면 바람이 나온다. 바람이 불로부터 나옴은 안으로부터 나옴이니, 안으로부터 나옴은 집으로부터 밖에 미치는 象이다.
二與五 正男女之位於內外 爲家人之道 明於內而巽於外 處家之道也
夫人有諸身者則能施於家 行於家者則能施於國 至於天下治 治天下之道 蓋治家之道也
推而行之於外耳 故取自內而出之象 爲家人之義也
二와 五가 남녀의 위치를 안과 밖에 바르게 하여 家人의 道가 되니,
안에 밝고 밖에 巽順함은 집안에 처하는 도리이다.
사람이 자기 몸이 있으면 집안을 다스려야 하고 집을 다스리는 자는 나라에 시행할 수 있어
천하가 다스려짐에 이르니, 천하를 다스리는 도는 대개 집을 다스리는 도를 미루어 밖에 행할 뿐이다.
그러므로 안으로부터 나오는 象을 취함이 가인의 뜻이 된다.
文中子書 以明內齊外爲義 古今善之 非取象之意也 所謂齊乎巽 言萬物潔齊於巽方 非巽有齊義也 如戰乎乾 乾非有戰義也
문중자의 책에는 안을 밝게 하고 밖을 깨끗이 함을 뜻으로 삼았는데, 古今에 이를 좋게 여기나 象을 취한 뜻이 아니다. 이른바 齊乎巽은 만물이 巽方에서 깨끗해짐을 말한 것이고, 巽에 깨끗하다는 뜻이 있은 것은 아니니, 戰乎乾이 乾에 싸운다는 뜻이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家人 ䷤
離下巽上
家人은 利女貞하니라
家人은 여자의 貞함이 이롭다.
家人之義는 各自脩一家之道요 不能知家外他人之事也라
家人의 뜻은 각자 한 집안의 道를 닦고, 집 밖의 타인의 일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統而論之하면 非元亨利君子之貞이라 故로 利女貞하니 其正이 在家內而已라
통합하여 논하면 元亨하여 君子의 貞이 이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貞함이 이로운 것이니, 그 바름이 家內에 있을 뿐이다.
[疏]正義曰:‘家人’者, 卦名也, 明家內之道, 正一家之人, 故謂之“家人.”
正義曰:[家人] 卦의 이름이니, 家內의 道에 밝아서 한 집안의 사람을 바로잡는다. 그러므로 “家人”이라 한 것이다.
‘利女貞’者, 旣修家內之道, 不能知家外他人之事, 統而論之, 非君子丈夫之正, 故但言“利女貞.”[利女貞] 이미 家內의 道를 닦고 집 밖의 타인의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통합하여 논하면 君子와 丈夫의 바름이 아니다. 그러므로 다만 “여자의 貞함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彖曰 家人은 女正位乎內하고
〈彖傳〉에 말하였다. “‘家人’은 여자가 안에서 자리를 바로잡고,
謂二也라
六二를 말한 것이다.
男正位乎外하니
남자가 밖에서 자리를 바로잡으니,
謂五也라 家人之義는 以內爲本이라 故로 先說女也라
九五를 말한 것이다. 家人의 뜻은 안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먼저 여자를 말한 것이다.
[疏]‘彖曰’至‘男正位乎外’
經의 [彖曰]에서 [男正位乎外]까지
正義曰:此因二‧五得正, 以釋家人之義, 幷明女貞之旨. 家人之道, 必須女主於內, 男主於外,
正義曰:이는 六二와 九五가 바름을 얻음을 인하여 ‘家人’의 뜻을 해석하고, 아울러 여자의 貞함의 뜻을 밝힌 것이다. 家人의 道는 반드시 여자가 안을 주장하고 남자가 밖을 주장하여야 하니,然後家道乃立, 今此卦六二柔而得位, 是女正位乎內也, 九五剛而得位, 是男正位乎外也. 家人以內爲本, 故先說女也.
그런 뒤에야 家道가 마침내 확립되는데, 지금 이 卦는 六二가 柔로서 正位를 얻었으니 이는 여자가 안에서 자리를 바로잡은 것이요, 九五가 剛으로서 正位를 얻었으니 이는 남자가 밖에서 자리를 바로잡은 것이다. 家人은 안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먼저 여자를 말한 것이다.
男女正이 天地之大義也라 家人에 有嚴君焉하니 父母之謂也라
남자와 여자가 〈안과 밖을〉 바로잡는 것이 天‧地의 大義이다. 家人에 嚴君이 있으니 父‧母를 이른다.
父父, 子子, 兄兄, 弟弟, 夫夫, 婦婦而家道正하니 正家而天下定矣니라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고, 형은 형답고, 아우는 아우답고, 남편은 남편답고, 부인은 부인다우면
家道가 바루어지니, 집안을 바로잡으면 天下가 안정될 것이다.
男女正’至‘天下定矣’
經의 [男女正]에서 [天下定矣]까지
正義曰:‘男女正 天地之大義也’者, 因正位之言, 廣明家人之義, 乃道均二儀, 非惟人事而已.
正義曰:[男女正 天地之大義也] 자리를 바로잡는다는 말을 인하여 ‘家人의 뜻은 바로 道가 二儀(天‧地)와 같고 비단 人事뿐이 아님’을 널리 밝힌 것이다.
家人, 卽女正於內, 男正於外, 二儀則天尊在上, 地卑在下, 同於男女正位, 故曰“天地之大義也.”家人은 바로 여자가 안을 바로잡고 남자가 밖을 바로잡는 것이요, 二儀는 하늘은 높이 위에 있고 땅은 낮게 아래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가 자리를 바로잡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天‧地의 大義이다.”라고 한 것이다.
‘家人有嚴君焉 父母之謂’者, 上明義均天地, 此又言道齊邦國.
[家人有嚴君焉 父母之謂] 위에서는 義가 天地와 똑같음을 밝혔고, 여기에서는 또 나라를 인도하고 가지런히 함을 말한 것이다.
父母, 一家之主, 家人尊事, 同於國有嚴君, 故曰“家人有嚴君焉, 父母之謂也.”
父‧母는 한 집안의 주장이니, 家人들이 높이 섬기기를 나라에 嚴君이 있는 것과 똑같이 한다. 그러므로 “家人에 嚴君이 있으니 父‧母를 이른다.”라고 한 것이다.
疏‘父父 子子 兄兄 弟弟 夫夫 婦婦而家道正 正家而天下定矣’者, 此歎美正家之功, 可以定於天下, 申成道齊邦國.
[父父 子子 兄兄 弟弟 夫夫 婦婦而家道正 正家而天下定矣] 이는 집안을 바로잡는 功이 天下를 안정시킬 수 있음을 歎美하였으니, 나라를 인도하고 가지런히 함을 거듭 이룬 것이다.
旣家有嚴君, 卽(入)[父]不失父道, 乃至婦不失婦道,이미 집안에 嚴君이 있으면 아버지가 아버지의 도리를 잃지 않아서 마침내 부인이 부인의 도리를 잃지 않음에 이르니,
尊卑有序, 上下不失, 而後爲家道之正, 各正其家, 无家不正, 卽天下之治定矣.尊卑에 차례가 있고 上下를 잃지 않은 뒤에 家道의 바름이 된다. 각각 그 집안을 바로잡아서 집안이 바르지 않음이 없으면 바로 천하의 다스려짐이 안정되는 것이다.
象曰 風自火出이 家人이니〈象傳〉에 말하였다. “바람이 불에서 나옴이 家人卦이니,
由內以相成熾也라안으로 말미암아 서로 熾盛함을 이루는 것이다.
[疏]正義曰:巽在離外, 是風從火出. 火出之初, 因風方熾, 火旣炎盛, 還復生風.
正義曰:巽이 離의 밖에 있으니, 이는 바람이 불에서 나오는 것이다. 불이 나오는 초기에는 바람을 인하여 막 熾盛하고, 불이 이미 불꽃이 盛해지면 다시 또 바람을 내니,
內外相成, 有似家人之義, 故曰“風自火出, 家人”也.안과 밖이 서로 이루는 것이 家人의 뜻과 유사함이 있다. 그러므로 “바람이 불에서 나옴이 家人卦이다.”라고 한 것이다.
君子以言有物而行有恒하나니라
君子가 보고서 말에 일이 있고 행실에 항상함이 있게 한다.”
家人之道는 脩於近小而不妄也라 故로 君子以言必有物而口无擇言하고 行必有恒而身无擇行이라
家人의 道는 가깝고 작은 것을 닦아 망령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君子가 보고서 말에 반드시 일이 있어서 입에 가릴(버릴) 말이 없고, 행실에 반드시 항상함이 있어서 몸에 가릴 행실이 없는 것이다.
[疏]正義曰:物, 事也. 言必有事, 卽口无擇言, 行必有常, 卽身无擇行.正義曰:物은 일이다. 말에 반드시 일이 있음은 바로 입에 가릴 말이 없는 것이요, 행실에 반드시 항상함이 있음은 바로 몸에 가릴 행실이 없는 것이다.
疏
正家之義, 修於近小, 言之與行, 君子樞機. 出身加人, 發邇化遠, 故擧言行以爲之誡.
집안을 바로잡는 뜻은 가깝고 작은 일을 닦는 것이니, 말과 행실은 君子의 樞機(門의 지도리와 화살의 機牙)이다. 몸에서 나와 남에게 가해지고 가까운 곳에서 나와 먼 곳을 교화하기 때문에 말과 행실을 들어 경계한 것이다.
疏
言旣稱物而行稱恒者, 發言立行, 皆須合於可常之事, 互而相足也.
말이 이미 일에 걸맞고 행실이 항상함에 걸맞음은 말을 하고 행실을 세움에 모두 모름지기 항상할 수 있는 일에 부합하는 것이니, 서로 충족된 것이다.
初九는 閑有家면 悔亡하리라
初九는 집안[有家]을 防閑(禮法으로 막음)하면 후회가 없어질 것이다.
[注]凡敎在初而法在始하니 家瀆而後嚴之하고 志變而後治之면 則悔矣라
무릇 가르침은 초기에 달려 있고 法은 始初에 달려 있으니, 집을 함부로 한 이후에 엄하게 다스리고 뜻이 변한 이후에 다스리면 후회하게 된다.
處家人之初하여 爲家人之始라 故로 宜必以閑有家니 然後悔亡也라
家人의 초기에 처하여 家人의 始初가 되었다. 그러므로 반드시 집안을 防閑해야 하는 것이니, 그런 뒤에야 후회가 없어지는 것이다.
[疏]正義曰:治家之道, 在初卽須嚴正, 立法防閑. 若黷亂之後, 方始治之, 卽有悔矣.
正義曰:집안을 다스리는 方道는 초기에 있을 적에 모름지기 嚴正하게 해서 法을 세워 防閑하여야 하니, 만약 함부로 하여 어지럽게 된 뒤에 비로소 다스리면 바로 후회가 있게 된다.
初九處家人之初, 能防閑有家, 乃得悔亡, 故曰“閑有家, 悔亡”也.
初九가 家人의 처음에 처하여 능히 집안을 防閑하면 마침내 후회가 없어짐을 얻는다. 그러므로 “집안을 防閑하면 후회가 없어질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閑有家는 志未變也라
〈象傳〉에 말하였다. “‘집안을 防閑함’은 뜻이 아직 변하지 않은 것이다.”
[疏]正義曰:‘志未變也’者, 釋在初防閑之義, 所以在初防閑其家者, 家人志未變黷也.
正義曰:[志未變也] 초기에 있으면서 防閑하는 뜻을 해석한 것이니, 초기에 있으면서 집안을 防閑하는 이유는 家人의 뜻이 아직 변하거나 함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六二는 无攸遂요 在中 饋면 貞吉하리라
六二는 이루는 바가 없고 집안에 있으면서 음식을 장만하면 貞하여 吉하리라.
[注]居內處中하여 履得其位하고 以陰應陽하여 盡婦人之正하여 義无所必遂요 職乎中饋하여 巽順而已라 是以로 貞吉也라
안에 거하고 中에 처하여 밟음이 正位를 얻었고, 陰으로서 陽에 應하여 부인의 바름을 다해서, 의리상 기필하여 이루는 바가 없고 집안에서 음식을 장만함을 직책으로 여겨서 巽順할 뿐이다. 이 때문에 貞하여 吉한 것이다.
[疏]正義曰:六二履中居位, 以陰應陽, 盡婦人之義也.
正義曰:六二가 中을 밟고 正位에 거하고 陰으로서 陽에 應하여 부인의 의리를 다하였다.
婦人之道, 巽順爲常, 无所必遂, 其所職主, 在於家中饋食供祭而已, 得婦人之正吉, 故曰“无攸遂, 在中饋, 貞吉”也.
부인의 道는 巽順함을 떳떳함으로 삼아서 기필하여 이루는 바가 없고, 직책으로 삼아 주장하는 바가 집안에 있으면서 음식을 장만하고 제사를 올림에 있을 뿐이어서 부인의 正하여 吉함을 얻었다. 그러므로 “이루는 바가 없고 집안에 있으면서 음식을 장만하면 貞하여 吉하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曰 六二之吉은 順以巽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六二의 吉함은 순하고 공손하기 때문이다.”
[疏]正義曰:擧爻位也.
正義曰:爻의 자리를 든 것이다.
疏
言‘吉’者, 明其以柔居中而得正位, 故能順以巽而獲吉也.
[吉] 柔로서 中에 거하여 正位를 얻었기 때문에 능히 순하고 공손하여 吉함을 얻음을 밝힌 것이다.
九三은 家人嗃嗃하여 悔厲나 吉이요 婦子嘻嘻면 終吝하리라
九三은 家人이 엄하고 혹독하여 엄함을 뉘우치나 吉하고, 부인과 자식이 嘻嘻(희희낙낙)하면 끝내 부끄러우리라.
以陽處陽하니 剛嚴者也요 處下體之極하니 爲一家之長者也라
陽爻로서 陽의 자리에 처하였으니 剛하고 嚴한 자요, 下體의 極에 처하였으니 한 집안의 어른이 된 자이다.
行與其慢으론 寧過乎恭이요 家與其瀆으론 寧過乎嚴이라
행실은 不敬[慢]하기보다는 차라리 공손함이 지나쳐야 하고, 집안은 함부로 하기보다는 차라리 엄격함이 지나쳐야 한다.
是以로 家人雖嗃嗃하여 悔厲나 猶得其道요 婦子嘻嘻하면 乃失其節也라
이 때문에 家人이 엄하고 혹독하여 嚴함을 뉘우치나 도리어 그 道를 얻고, 부인과 자식이 嘻嘻하면 마침내 그 節度를 잃는 것이다.
[疏]正義曰:‘嗃嗃’, 嚴酷之意也. ["嗃 엄할학"]
正義曰:[嗃嗃] 嚴하고 혹독한 뜻이다.
‘嘻嘻’, 喜笑之貌也. 九三處下體之上, 爲一家之主, 以陽處陽, 行剛嚴之政, 故家人嗃嗃.[嘻嘻] 기뻐하여 웃는 모양이다. 九三이 下體의 위에 처하여 한 집안의 주장이 되고, 陽爻로서 陽의 자리에 처하여 剛하고 嚴한 政事를 행한다. 그러므로 家人이 엄하고 혹독한 것이다.疏
雖復嗃嗃傷猛, 悔其酷厲, 猶保其吉, 故曰“悔厲, 吉.”
비록 다시 엄하고 혹독해서 사나움에 상하여 그 혹독하고 엄함을 후회하나 오히려 吉함을 보존한다. 그러므로 “엄함을 뉘우치나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疏
若縱其婦子, 慢黷嘻嘻, 喜笑而无節, 則終有恨辱, 故曰“婦子嘻嘻, 終吝”也.
만약 부인과 자식을 풀어놓아서 함부로 하고 嘻嘻해서 기뻐하고 웃으면서 節度가 없으면 끝내 悲恨과 辱이 있다. 그러므로 “부인과 자식이 嘻嘻하면 끝내 부끄러우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曰 家人嗃嗃은 未失也요 婦子嘻嘻는 失家節也라
〈象傳〉에 말하였다. “‘家人이 엄하고 혹독함’은 잘못하지 않은 것이요, ‘부인과 자식이 嘻嘻함’은 집안의 節度를 잃은 것이다.”
疏
[疏]正義曰:‘未失也’者, 初雖悔厲, 似失於猛, 終无慢黷, 故曰“未失也.”
正義曰:[未失也] 처음은 비록 엄함을 후회하여 사나움에 잘못된 듯하나, 끝내 함부로 함이 없으므로 “잘못하지 않았다.”라고 한 것이다.
疏
‘失家節’者, 若縱其嘻嘻, 初雖歡樂, 終失家節也.
[失家節] 만약 嘻嘻함을 풀어놓으면 처음은 비록 기뻐하고 즐거워하나 끝내 집안의 節度를 잃게 된다.
六四는 富家니 大吉하니라
六四는 집이 부유하니, 크게 吉하다.
能以其富順而處位라 故로 大吉也니 若但能富其家면 何足爲大吉이리오
능히 그 부유함과 순함으로써 大臣의 지위에 처하였다. 그러므로 크게 길한 것이니, 만약 다만 자기 집안을 부유하게 할 뿐이라면 어찌 크게 길함이 될 수 있겠는가.
體柔居巽하고 履得其位하여 明於家道하여 以近至尊하니 能富其家也라
體가 柔하고 巽에 거하였으며 밟음이 正位를 얻어서 家道에 밝아 至尊을 가까이하니, 능히 그 집안을 부유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疏
[疏]正義曰:富, 謂祿位昌盛也. 六四體柔處巽, 得位承五, 能富其家者也.
正義曰:富는 祿과 지위가 昌盛함을 이른다. 六四가 體가 柔하고 巽에 처하였으며 正位를 얻고 九五를 받들어서 능히 그 집안을 부유하게 하는 자이다.
疏
由其體巽承尊, 長保祿位, 吉之大者也, 故曰“富家, 大吉.”
體가 공손하여 높은 사람을 받듦으로 말미암아 祿과 지위를 길이 보존하니, 吉함이 큰 자이다. 그러므로 “집이 부유하니, 크게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富家大吉은 順在位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집안이 부유하니 크게 吉함’은 順함으로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疏
[疏]正義曰:‘順在位’者, 所以致大吉, 由順承於君而在臣位, 故不見黜奪也.
正義曰:[順在位] 大吉을 이룬 이유이니, 順히 군주를 받들면서 大臣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내쳐짐과 빼앗김을 당하지 않은 것이다.
九五는 王假有家면 勿恤이라도 吉하니라
九五는 王이 이 道에 이르러 집안을 소유하면 근심하지 않아도 吉하다.
[注]假은 至也라 履正而應하고 處尊體巽하니 王至斯道하여 以有其家者也라 居於尊位하여 而明於家道면 則下莫不化矣라
‘假’은 이름[至]이다. 正位를 밟고 〈六二에〉 應하며 높은 지위에 처하고 體가 공손하니, 王이 이 道에 이르러서 그 집안을 소유한 자이다. 높은 지위에 거하여 家道에 밝으면 아랫사람들이 교화되지 않음이 없다.
父父, 子子, 兄兄, 弟弟, 夫夫, 婦婦하여 六親和睦하여 交相愛樂而家道正하니 正家而天下定矣라 故로 王假有家면 則勿恤而吉이라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고, 형은 형답고, 아우는 아우답고, 남편은 남편답고, 부인은 부인다워서 六親이 和睦하여 서로 사랑하고 즐거워해서 家道가 바르니, 집안을 바로잡으면 天下가 안정된다. 그러므로 王이 이 道에 이르러 집안을 소유하면 근심하지 않아도 吉한 것이다.
[疏]正義曰:‘王假有家’者, 假, 至也. 九五履正而應, 處尊體巽,
正義曰:[王假有家] ‘假’은 이름이다. 九五가 正位를 밟고 應하며 높은 지위에 처하고 體가 공손하니,
是能以尊貴巽接於物, 王至此道, 以有其家, 故曰“王假有家”也.
이는 尊貴함으로서 남에게 공손히 접하는 것이니, 왕이 이 道에 이르러서 그 집안을 소유하였다. 그러므로 “王이 이 道에 이르러 집안을 소유한다.”라고 한 것이다.
‘勿恤 吉’者, 居於尊位而明於家道, 則在下莫不化之矣, 不須憂恤而得吉也, 故曰“勿恤 吉”也.
[勿恤 吉] 높은 지위에 거하여 家道에 밝으면 아래에 있는 자들이 교화되지 않는 이가 없으니, 굳이 근심하지 않아도 吉함을 얻는다. 그러므로 “근심하지 않아도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王假有家는 交相愛也라
〈象傳〉에 말하였다. “‘王이 이 道에 이르러 집안을 소유함’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疏]正義曰:‘交相愛也’者, 王旣明於家道, 天下化之, 六親和睦, 交相愛樂也.
正義曰:[交相愛也] 王이 이미 家道에 밝아서 天下가 교화되니, 六親이 和睦하여 서로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上九는 有孚하고 威如하면 終吉하리라
上九는 믿음이 있고 위엄이 있으면 끝내 吉하리라
[注]處家人之終하고 居家道之成하니 刑于寡妻하여 以著于外者也라 故로 曰 有孚라하니라
家人의 終에 처하고 家道의 이루어짐에 거하였으니, 寡妻에게 모범이 되어 밖에 드러난 자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凡物이 以猛爲本者는 則患在寡恩하고 以愛爲本者는 則患在寡威라 故로 家人之道 尙威嚴也라모든 사물은, 사나움을 근본으로 삼는 자는 근심이 은혜가 적음에 있고, 사랑을 근본으로 삼는 자는 근심이 위엄이 적음에 있다. 그러므로 家人의 道가 威嚴을 숭상하는 것이다.
家道可終은 唯信與威니 身得威敬이면 人亦如之리니 反之於身이면 則知施於人也리라
家道를 잘 마칠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과 위엄이니, 몸이 위엄과 공경을 얻으면 사람들 또한 그와 같이 할 것이니, 자기 몸에 돌이켜보면 남에게 베풀 줄을 알 것이다.
[疏]正義曰:上九處家人之終, 家道大成, 刑于寡妻, 以著於外, 信行天下, 故曰“有孚”也.
正義曰:上九가 家人의 終에 처하여 家道가 크게 이루어졌으니, 寡妻에게 모범이 되어 밖에 드러나서 믿음이 天下에 행해진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威被海內, 故曰“威如.” 威信竝立, 上得終於家道而吉從之, 故曰“有孚, 威如, 終吉”也.
위엄이 海內에 입혀진다. 그러므로 “위엄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위엄과 믿음이 함께 서서 윗사람이 家道를 끝마쳐 吉함이 뒤따른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고 위엄이 있으면 끝내 吉하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曰 威如之吉은 反身之謂也라
〈象傳〉에 말하였다. “‘위엄이 있어 吉함’은 자기 몸에 돌이킴을 이른다.”
[疏]正義曰:‘反身之謂’者, 身得人敬則敬於人, 明知身敬於人, 人亦敬己. 反之於身, 則知施之於人, 故曰“反身之謂也.”
正義曰:[反身之謂] 자신이 남의 공경을 얻으면 남을 공경하게 되니, 자신이 남을 공경할 줄 알면 남 또한 자기를 공경함을 밝힌 것이다. 자기 몸에 돌이켜보면 남에게 베풀 줄을 안다. 그러므로 “자기 몸에 돌이킴을 이른다.”라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