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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구 본문
姤䷫(천풍구)
주역의 하괘로 64괘중 44번째 괘
양이 5개 음이 하나인 괘이며
양이 그 기운을 다하여 음이 시작되는 괘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드는 시기이다.
巽下乾上
姤는 女壯하니 勿用取女니라
姤는 여자가 健壯하니, 여자를 취함에 쓰지 말아야 한다.
[疏]正義曰:姤, 遇也. 此卦一柔而遇五剛, 故名爲姤.
正義曰:‘姤’는 만남이다. 이 卦는 한 柔가 다섯 剛을 만났다.
그러므로 이름을 ‘姤’라 한 것이다.
施之於人,
則是一女而遇五男, 爲壯至甚,
故戒之曰 “此女壯甚, 勿用取此女也.”
이것을 사람에게 베풀면
이는 한 여자가 다섯 남자를 만나서 健壯함이 지극히 심한 것이다.
그러므로 경계하기를 “이 여자가 건장함이 심하니, 이러한 여자를 취함에 쓰지 말라.”라고 한 것이다.
彖曰 姤는 遇也니 柔遇剛也라
〈彖傳〉에 말하였다. “‘姤’는 만남이니, 柔가 剛을 만난 것이다.
施之於人이면 卽女遇男也니 一女而遇五男하여 爲壯至甚이라 故로 不可取也라
이것을 사람에게 베풀면 바로 여자가 남자를 만난 것이니,
한 여자가 다섯 남자를 만나서 건장함이 지극히 심하다.
그러므로 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疏]正義曰:
此就爻釋卦名,
以初六一柔而上遇五剛, 所以名遇,
而用釋卦辭女壯勿用取女之義也.
正義曰:이는 爻를 가지고 卦의 이름을 해석한 것이다. ‘
初六의 한 柔가 위에 다섯 剛을 만났기 때문에 遇라 이름한 것’을 가지고,
卦辭의 “여자가 건장하니, 여자를 취함에 쓰지 말아야 한다.”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勿用取女는 不可與長也일세라 天地相遇하면
品物咸章也요
‘여자를 취함에 쓰지 말아야 함’은 더불어 長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면 品物이 모두 밝게 드러나고,
[注]正乃功成也라
正道가 마침내 功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疏]‘勿用取女’至‘品物咸章也’
經의 [勿用取女]에서 [品物咸章也]까지
正義曰:‘勿用取女 不可與長’者,
女之爲體, 婉娩貞順, 方可期之偕老,
淫壯若此, 不可與之長久, 故勿用取女.
正義曰:[勿用取女 不可與長]
여자의 體는 공손하고 貞順하여야 비로소 偕老를 기약할 수 있는데, 음탕하고 건장함이 이와 같으면 더불어 長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여자를 취함에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天地相遇 品物咸章’者, 已下廣明遇義. 卦得遇名,
本由一柔與五剛相遇,
[天地相遇 品物咸章] 이하는 만남의 뜻을 넓혀 밝힌 것이다.
卦가 ‘遇’란 이름을 얻음은 본래 한 柔가 다섯 剛과 서로 만나기 때문이다.
故遇辭非美, 就卦而取, 遂言遇不可用,
是勿用取女也. 故孔子更就天地, 歎美遇之爲義不可廢也.
그러므로 만남이라는 말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니,
卦에 나아가 취하여 마침내 ‘만남을 써서는 안 됨’을 말하였는바,
이는 ‘여자를 취함에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孔子는 다시 하늘과 땅에 나아가서 ‘만남의 뜻을 폐할(버릴) 수 없음’을 탄미하신 것이니,
天地若各亢所處, 不相交遇, 則萬品庶物, 无由彰顯, 必須二氣相遇, 乃得化生, 故曰“天地相遇, 品物咸章.”
하늘과 땅이 만약 각기 거처한 곳을 높여서 서로 사귀고 만나지 않으면 萬品과 庶物이 말미암아 밝게 드러날 수가 없는바, 반드시 〈하늘의 陽과 땅의 陰〉 두 기운이 서로 만나야 비로소 만물이 化生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면 品物이 모두 밝게 드러난다.”라고 한 것이다.
剛遇中正하면 天下大行也니
剛이 中正을 만나면 天下가 크게 행해지니,
[注]化乃大行也라
교화가 마침내 크게 행해지는 것이다.
[疏]正義曰:莊氏云“一女而遇五男, 旣不可取, 天地匹配, 則能成品物.”
正義曰:莊氏가 말하기를 “한 여자가 다섯 남자를 만남은 이미 취할 수 없지만 하늘과 땅이 배필이 되면 品物을 이룰 수 있다.”라고 하였다.
由是言之, 若剛遇中正之柔, 男得幽貞之女, 則天下人倫之化, 乃得大行也.
이것을 가지고 말하면, 만약 剛이 中正한 柔를 만나고 남자가 얌전하고 정조가 있는 여자를 얻으면 천하의 인륜의 교화가 비로소 크게 행해질 수 있는 것이다.
姤之時義大矣哉라
姤의 때와 義가 크다.”
[注]凡言義者는 不盡於所見하여 中有意謂者也라
무릇 ‘義’라고 말한 것은 나타난 바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고 가운데에 意謂(意義)가 있는 것이다.
[疏]‘姤之時義大矣哉’
經의 [姤之時義大矣哉]
正義曰:上旣博美, 此又結歎, 欲就卦而取義. 但是一女而遇五男, 不足稱美,
正義曰:위에서는 이미 넓게 찬미하였고 여기에서는 또 끝맺어 감탄해서 卦를 가지고 뜻을 취하고자 한 것이다. 다만 한 여자가 다섯 남자를 만나는 것은 칭찬하여 아름답다 할 것이 못 되고,
博論天地相遇, 乃致品物咸章, 然後姤之時義大矣哉.
늘과 땅이 서로 만남을 널리 논해야 비로소 品物이 모두 밝게 드러나니, 그런 뒤에야 姤의 때
[疏]注‘凡言義者’至‘有意謂者也’
注의 [凡言義者]에서 [有意謂者也]까지
正義曰:注總爲稱義發例, 故曰“凡言”也. 就卦以驗名義, 只是女遇於男,
正義曰:注에서 義라 稱한 準例를 發明해서 총괄하여 “凡言”이라 한 것이다. 卦를 가지고 이름의 뜻을 징험해보면 다만 여자가 남자를 만나는 것인데,
博尋遇之深旨, 乃至道該天地, 故云“不盡於所見, 中有意謂者也.”
만남의 깊은 뜻을 널리 찾아보면 비로소 지극한 道가 하늘과 땅을 모두 포함하게 된다. 그러므로 “나타난 바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고 가운데에 意謂(意義)가 있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天下有風이 姤니 后以施命하여 誥四方하나니라
〈象傳〉에 말하였다. “하늘 아래에 바람이 있는 것이 姤卦이니,
人君이 보고서 명령을 베풀어 四方을 가르친다.”
[疏]正義曰:風行天下, 則无物不遇, 故爲遇象.
正義曰:바람이 하늘 아래에 다니면 만나지 못하는 물건이 없다.
그러므로 만나는 象이 된 것이다.
‘后以施命 誥四方’者, 風行草偃, 天之威令, 故人君法此, 以施敎命, 誥於四方也.
[后以施命 誥四方]
바람이 지나가면 풀이 누움은 하늘의 위엄과 명령이다.
그러므로 人君이 이것을 본받아서 敎命을 베풀어 四方에 가르치는 것이다.
初六은 繫于金柅면 貞吉이요 有攸往이면 見凶하니 羸豕孚蹢躅하니라
初六은 金柅(쇠고동목)에 매여 있으면 貞하여 吉하고, 가는 바를 두면 凶함을 보니, 약한 돼지(암퇘지)가 조급함에 힘써 날뛰는 것이다.
[注]金者는 堅剛之物이요 柅者는 制動之主니 謂九四也라
‘金’은 단단하고 강한 물건이요 ‘柅’는 制動하는 주체이니, 九四를 이른다.
初六이 處遇之始하여 以一柔而承五剛하여 體夫躁質이어늘
得遇而通하여 散而无主하니 自縱者也라
初六이 만남의 시초에 처하여 한 柔가 다섯 剛을 받들어 조급한 자질을
體行하는데 만남을 얻어 통해서 흩어지고 주장함이 없으니,
제멋대로 방종한 자이다.
柔之爲物은 不可以不牽이요 臣妾之道는 不可以不貞이라 故로 必繫于正應이라야 乃得貞吉也라
柔란 물건은 끌려가지 않으면 안 되고 臣妾의 道는 바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正應에 매여 있어야 비로소 貞吉을 얻는 것이다.
若不牽于一하고 而有攸往行이면 則唯凶是見矣라 羸豕는 謂牝豕也니
群豕之中에 豭强而牝弱이라 故로 謂之羸豕也라
만약 하나에 끌려가지 않고 가는 바를 두면 오직 흉함을 볼 뿐이다.
‘羸豕’는 암퇘지를 이르니, 여러 돼지 중에 수놈은 강하고 암놈은 약하다. 그러므로 〈암놈을〉 ‘약한 돼지[羸豕]’라 한 것이다.
孚는 猶務躁也라 夫陰質而躁恣者는 羸豕特甚焉하니
言以不貞之陰으로 失其所牽하여 其爲淫醜가 若羸豕之
孚務 蹢躅也라
‘孚’는 조급함에 힘쓰는 것과 같다. 陰의 質이면서 조급하고 방자한 것으로는 약한 돼지가 특별히 심하니, ‘바르지 못한 陰으로서 끌어주는 바를 잃어서 음탕하고 추악함이 마치 약한 돼지가 조급함에 힘써 날뛰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疏]‘初六繫于金柅’至‘羸豕孚蹢躅’
經의 [初六繫于金柅]에서 [羸豕孚蹢躅]까지
正義曰:‘繫于金柅 貞吉’者, 金者, 堅剛之物, 柅者, 制動之主, 謂九四也.
正義曰:[繫于金柅 貞吉] ‘金’은 단단하고 강한 물건이요, ‘柅’은 制動하는 주체이니, 九四를 이른다.
初六陰質, 若繫於正應, 以從於四, 則貞而吉矣, 故曰“繫于金柅, 貞吉”也.
初六은 陰의 자질이니, 만약 正應에 매여 있어서 九四를 따르면 貞하여 吉하다. 그러므로 “金柅에 매여 있으면 貞하여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有攸往 見凶’者, 若不牽於一, 而有所行往, 則惟凶是見矣, 故曰“有攸往, 見凶.”
[有攸往 見凶] 만약 하나에 끌려가지 않고 가는 바를 두면 오직 흉함을 볼 뿐이다. 그러므로 “가는 바를 두면 흉함을 본다.”라고 한 것이다.
‘羸豕孚蹢躅’者, 初六處遇之初, 以一柔而承五剛, 是不繫金柅, 有所往者也.
[羸豕孚蹢躅] 初六이 만남의 초기에 처하여 한 柔로서 다섯 剛을 받드니, 이는 金柅에 매여 있지 아니하여 가는 바를 두는 자이다.
不繫而往, 則如羸豕之務躁而蹢躅然也, 故曰“羸豕孚蹢躅.”
매여 있지 않고 가면 이는 약한 돼지가 조급함에 힘써 날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약한 돼지가 조급함에 힘써 날뛰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羸豕, 謂牝豕也, 群豕之中, 豭强而牝弱也, 故謂牝豕爲羸豕. 陰質而淫躁, 牝豕特甚焉, 故取以爲喩.
‘羸豕’는 암퇘지를 이르니, 여러 돼지 가운데에 수놈은 강하고 암놈은 약하다. 그러므로 암퇘지를 일러 ‘약한 돼지[羸豕]’라 한 것이다. 陰의 자질이면서 음탕하고 조급함은 암퇘지가 특별히 심하다. 그러므로 취하여 비유로 삼은 것이다.
[疏]注‘柅者制動之主’(者)
注의 [柅者制動之主]
正義曰:‘柅者 制動之主’者, 柅之爲物, 衆說不同. 王肅之徒皆爲“織績之器, 婦人所用”,
正義曰:[柅者 制動之主] ‘柅’란 물건은 여러 說이 똑같지 않다. 王肅의 무리는 모두 “베를 짜고 길쌈하는 기구이니, 婦人이 사용하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惟馬云“柅者, 在車之下, 所以止輪令不動者也.” 王注云“柅, 制動之主”, 蓋與馬同.
오직 馬融만 “‘柅’는 수레의 아래에 있으니, 수레바퀴를 멈추게 해서 움직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王輔嗣(王弼)의 注에는 “‘柅’는 制動하는 주체이다.”라 하였으니, 馬融과 같은 것이다.
象曰 繫于金柅는 柔道牽也라
〈象傳〉에 말하였다. “‘金柅에 매여 있음’은 陰柔의 道가 끌려가는 것이다.”
[疏]正義曰:‘柔道牽’者, 陰柔之道, 必須有所牽繫也.
正義曰:[柔道牽] 陰柔의 道는 반드시 끌려가는 바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九二는 包有魚하니 无咎나 不利賓하니라
九二는 부엌에 魚物이 있으니 허물이 없으나, 손님에게는 이롭지 않다.
[注]初陰而窮下라 故로 稱魚라 不正之陰이 處遇之始하여 不能逆近者也라
初六이 陰이면서 맨 아래에 있으므로 ‘魚’라 칭한 것이다. 바르지 못한 陰이 만남의 시초에 처하여 가까운 자를 거스르지 못한다.
初自樂來應己之廚요 非爲犯奪이라 故로 无咎也라 擅人之物하여 以爲己惠는 義所不爲라 故로 不利賓也라
初六이 제 스스로 좋아하여 기꺼이 와서 자기의 부엌에 應하는 것이요, 자기가 범하여 빼앗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남의 물건을 차지하여 자기의 은혜로 삼는 것은 의리상 하지 않는 바이다. 그러므로 손님에게는 이롭지 않은 것이다.
[疏]正義曰:‘庖有魚 无咎’者, 初六以陰而處下, 故稱魚也. 以不正之陰, 處遇之始, 不能逆於所近,
正義曰:[庖有魚 无咎] 初六이 陰으로서 아래에 처하였으므로 ‘魚’라 칭한 것이다. 바르지 못한 陰으로서 만남의 시초에 처하여 가까운 바를 거스르지 못한다.
故捨九四之正應, 樂充九二之庖廚, 故曰“九二, 庖有魚.” 初自樂來, 爲己之廚, 非爲犯奪, 故得无咎也.
그러므로 九四의 正應을 버리고 기꺼이 九二의 부엌을 채운다. 그러므로 “九二는 부엌에 魚物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初六이 제 스스로 기꺼이 와서 자기의 부엌이 된 것이요 자기가 범하여 빼앗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不利賓’者, 夫擅人之物, 以爲己惠, 義所不爲, 故不利賓也.
[不利賓] 남의 물건을 차지하여 자기의 은혜로 삼는 것은 의리상 하지 않는 바이다. 그러므로 손님에게는 이롭지 않은 것이다.
象曰 包有魚는 義不及賓也라
〈象傳〉에 말하였다. “‘부엌에 魚物이 있음’은 의리상 손님에게 미칠 수 없는 것이다.”
[疏]正義曰:‘義不及賓’者, 言有他人之物, 於義不可及賓也.
正義曰:[義不及賓] 타인의 물건을 소유함은 의리에 있어서 손님에게 미칠 수 없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
九三은 臀无膚하여 其行次且니 厲하나 无大咎하리라
九三은 볼기짝에 살이 없어 그 나아감이 주저하니, 위태로우나 큰 허물이 없으리라.
[注]處下體之極하고 而二據於初하여 不爲己(棄)[乘]하여 居不獲安하고 行(爲)[無]其應하여
下體의 極에 처하고 九二가 初六을 점거하고 있어서 자기가 탈 수 없어 거함에 편안한 곳을 얻지 못하고 나아감에 그 應이 없다.
不能牽據以固所處라 故로 曰 臀無膚하여 其行次且也라
그래서 끌어당겨 점거하여 거처하는 바를 견고히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볼기짝에 살이 없어 그 나아감이 주저한다.”라고 한 것이다.
然履得其位하여 非爲妄處요 不遇其時라 故使危厲요 災非己招라 是以로 无大咎也라
그러나 밟은 자리가 正位를 얻어서 망령된 곳이 되지 않고, 그 때를 만나지 못했으므로 위태롭게 된 것이며, 재앙이 자기가 부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허물이 없는 것이다.
[疏]正義曰:陽之所據者, 陰也. 九三處下體之上, 爲內卦之主, 以乘於二, 无陰可據, 居不獲安, 上又无應,
正義曰:陽이 점거하는 것은 陰이다. 九三이 下體의 위에 처하여 內卦의 주장이 되어서 九二를 타고 있어서 점거할 만한 陰이 없어 거함에 편안함을 얻지 못하고 위에 또 應이 없다.
不能牽據以固所處, 同於夬卦九四之失據, 故曰“臀无膚, 其行次且”也.
그래서 끌어당겨 점거하여 거처하는 바를 견고히 하지 못하니 夬卦 九四가 점거할 곳을 잃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볼기짝에 살이 없어 그 나아감이 주저한다.”라고 한 것이다.
然(復)[履]得其位, 非爲妄處, 特以不遇其時, 故致此危厲, 災非己招, 故无大咎, 故曰“厲无大咎.”
그러나 밟고 있는 자리가 正位를 얻어서 망령된 곳이 되지 않고, 다만 때를 만나지 못하였으므로 이 위태로움을 부른 것이며, 재앙이 자기가 부른 것이 아니므로 큰 허물이 없다. 그러므로 “위태로우나 큰 허물이 없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曰 其行次且는 行未牽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그 나아감이 주저함’은 감에 끌어당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疏]正義曰:‘行未牽’者, 未能牽據, 故其行次且, 是行未牽也.
正義曰:[行未牽] 끌어당겨 점거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나아감이 머뭇거리니, 이는 ‘감에 끌어당기지 못하는 것’이다.
九四는 包无魚하니 起凶하리라
九四는 부엌에 魚物이 없으니, 起動하면 흉하리라.
[注]二有其魚故로 失之也라 无風而動하고 失應而作이라 是以凶也라
九二가 그 魚物을 소유하였으므로 〈九四가〉 그것을 잃은 것이다. 바람이 없이 動하고, 應을 잃고서 일어난다. 이 때문에 흉한 것이다.
[疏]正義曰:‘庖无魚’者, 二擅其應, 故曰“庖无魚”也. 庖之无魚, 則是无民之義也.
正義曰:[庖无魚] 九二가 九四의 應을 차지하였으므로 “부엌에 어물이 없다.”라 말한 것이다. 부엌에 어물이 없음은 바로 백성이 없다는 뜻이다.
‘起凶’者, 起, 動也. 无民而動, 失應而作, 是以凶也.
[起凶] ‘起’는 起動함이다. 백성이 없이 動하고, 應을 잃고서 일어난다. 이 때문에 흉한 것이다.
象曰 无魚之凶은 遠民也라
〈象傳〉에 말하였다. “魚物이 없는 흉함은 백성을 멀리한 것이다.”
[疏]正義曰:‘遠民’者, 陰爲陽之民, 爲二所據, 故曰“遠民也.”
正義曰:[遠民] 陰은 陽의 백성이 되는데 九二에게 점거되었다. 그러므로 “백성을 멀리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九五는 以杞包瓜로 含章이나 有隕自天이리라
九五는 杞나무와 뒤웅박[包瓜]으로써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으나 떨어지게 함은 하늘로부터 한다.
[注]杞之爲物은 生於肥地者也요 包瓜爲物은 繫而不食者也라
杞나무란 물건은 비옥한 땅에서 자라고, 뒤웅박이란 물건은 한곳에 매여 있어 먹지 못하는 것이다.
九五履得尊位로되 而不遇其應하여 得地而不食하고 含章而未發하니 不遇其應하면 命未流行이라
九五가 밟고 있는 것이 높은 지위를 얻었으나 그 應을 만나지 못해서 땅을 얻고도 먹지 못하고 아름다움을 머금고도 드러나지 못하니, 그 應을 만나지 못하면 命을 流行하게 하지 못한다.
然處得其所하고 體剛居中하여 志不舍命하여 不可傾隕이라 故로 曰 有隕自天也라하니라
그러나 처한 것이 제자리를 얻고 體가 剛하고 中에 거하여 뜻에 命을 버리지 아니해서 기울게 하고 떨어뜨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떨어지게 함은 하늘로부터 한다.”라 한 것이다.
[疏]‘九五以杞包瓜’至‘有隕自天’
經의 [九五以杞包瓜]에서 [有隕自天]까지
正義曰:‘以杞匏瓜’者, 杞之爲物, 生於肥地, 匏瓜爲物, 繫而不食,
正義曰:[以杞匏瓜] 杞나무란 물건은 비옥한 땅에서 자라고, 뒤웅박이란 물건은 한곳에 매여 있어 먹지 못한다.
九五處得尊位而不遇其應, 是得地而不食, 故曰“以杞匏瓜”也.
九五가 처한 것이 높은 지위를 얻었으나 그 應을 만나지 못했으니, 이는 땅을 얻었으나 먹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杞나무와 뒤웅박으로써 한다.”라고 한 것이다.
‘含章 有隕自天’者, 不遇其應, 命未流行, 无物發起其美, 故曰“含章.”
[含章 有隕自天] 그 應을 만나지 못하여 命을 流行하게 하지 못하면 자기의 아름다움을 일으킬 물건이 없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을 머금었다.”라고 한 것이다.
然體剛居中, 雖(復)[履]當位, 命未流行, 而(不能)[能不]改其操, 无能傾隕之者, 故曰“有隕自天”, 蓋言惟天能隕之耳.
그러나 體가 剛하고 中에 거하여 비록 마땅한 자리를 밝고 있으나 命을 流行하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지조를 고치지 아니하여 능히 기울게 하고 떨어뜨릴 자가 없다. 그러므로 “떨어지게 함은 하늘로부터 한다.”라 한 것이니, 오직 하늘만이 능히 떨어뜨릴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疏]注‘杞之爲物生於肥地者也’
注의 [杞之爲物生於肥地者也]
正義曰:‘杞之爲物 生於肥地者’也, 先儒說杞, 亦有不同.
正義曰:[杞之爲物 生於肥地者也] 先儒들이 ‘杞’를 설명한 것이 또한 똑같지 않다.
馬云“杞, 大木也, 左傳云‘杞梓皮革自楚(注)[往]’”, 則爲杞梓之杞. 子夏傳曰“作杞匏瓜”,
馬融은 “‘杞’는 큰 나무이니, ≪春秋左氏傳≫에 ‘杞梓와 皮革이 楚나라로부터 간다.’ 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杞梓’의 ‘杞’로 여긴 것이요, ≪子夏易傳≫에는 “杞를 가지고 瓜를 싼다.”라 하고,
薛虞記云“杞, 杞柳也, 杞性柔刃(靭), 宜屈橈, 似匏瓜”, 又爲杞柳之杞. 案王氏云“生於肥地”, 蓋以杞爲今之枸杞也.
薛虞의 ≪記≫에는 “‘杞’는 ‘杞柳’이니, 杞柳의 성질은 부드럽고 질겨서 마땅히 굽힐 수가 있어서 瓜를 쌀 수 있을 듯하다.”라고 하여 또 ‘杞柳’의 ‘杞’라 하였다.
살펴보건대, 王輔嗣(王弼)가 “비옥한 땅에서 자란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杞’를 지금의 枸杞로 여긴 것이다.
象曰 九五含章은 中正也일새요 有隕自天은 志不舍命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九五의 ‘아름다움을 머금음’은 中正하기 때문이요, ‘떨어지게 함은 하늘로부터 함’은 뜻이 命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疏]正義曰:‘中正’者, 中正, 故有美, 无應, 故含章而不發. 若非九五中正, 則无美可含, 故擧爻位而言中正也.
正義曰:[中正] 中正하기 때문에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요, 應이 없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머금고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만약 九五의 中正이 아니면 머금을 만한 아름다움이 없다. 그러므로 爻의 자리를 들어 中正을 말한 것이다.
‘志不舍命’者, 雖命未流行, 而居尊當位, 志不舍命, 故曰不可傾隕也.
[志不舍命] 비록 命을 流行하게 하지는 못하나 높은 자리에 거하고 자리에 합당하여 뜻이 命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울게 하고 떨어트릴 수 없다.”라고 한 것이다.
上九는 姤其角이라 吝하나 无咎리라
上九는 뿔을 만난다. 부끄러우나 허물이 없을 것이다.
[注]進之於極하여 无所復遇하고 遇角而已라 故曰 姤其角也라
極에 나아가서 다시 만날 것이 없고 뿔을 만날 뿐이다. 그러므로 “그 뿔을 만난다.”라고 한 것이다.
進而无遇에 獨恨而已요 不與物爭이면 其道不害라 故无凶咎也라
나아가서 만나지 못했을 때에 오직 恨할 뿐이요, 남과 다투지 않으면 그 道가 해롭지 않다. 그러므로 흉함과 허물이 없는 것이다.
[疏]正義曰:‘姤其角’者, 角者, 最處體上, 上九進之於極, 无所復遇, 遇角而已, 故曰“姤其角”也.
正義曰:[姤其角] ‘뿔’은 體의 가장 위에 처한 것이니, 上九가 極에 나아가서 다시 만날 것이 없고 뿔을 만날 뿐이다. 그러므로 “그 뿔을 만난다.”라고 한 것이다.
‘吝 无咎’者, 角非所安, 與无遇等, 故獨恨而鄙吝也. 然不與物爭, 其道不害, 故无凶咎, 故曰“无咎”也.
[吝 无咎] 뿔은 편안히 여길 곳이 아니어서 만나지 못한 것과 똑같다. 그러므로 홀로 恨하여 鄙吝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남과 더불어 다투지 않으면 그 道가 해롭지 않으므로 흉함과 허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을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姤其角은 上窮吝也라
〈象傳〉에 말하였다. “‘그 뿔을 만남’은 위로 窮極하여 부끄러운 것이다.”
[疏]正義曰:‘上窮吝’者, 處於上窮, 所以遇角而吝也.
正義曰:[上窮吝] 위로 窮極함에 처하였으니, 이 때문에 뿔을 만나 부끄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