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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풍택중부괘

運善최명길 2022. 1. 2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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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의 64괘 가운데 내나이의 숫자 
 
61번째인 풍택중부라는 괘를 살펴 보았다.(의심 없는 굳은 마음으로 내내 정성스러움을 지속 할 수 있는 믿음
새가 알을 품듯이 하는 마음) 
 
괘의 그림을 잘 보면 안쪽이 끊어진 작대기 두 개가 보인다.  
큰 통나무를 다듬어서 가운데 사람이 탈 수 있게 배를 만든 것 같은 형상이다.
사람이 변치않는 믿음을 가지고 정성스럽고 자신감 있게 살아가다 보면
고난에 처했을 때 고난의 강을 건너게 해줄 배가 턱 하니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즉 해법이 떠오르게 된다는 뜻이기도하다.
옛 사람들은 큰 나무가 물 위에 뜨는 것을 보고 배로 만들기 전에는
나무를 바로 사용했을 것이고 많이 불편을 느꼈을 것이다.
그 불편함이 나무의 가운데를 파내서 사람이 탈 수 있는
배를 만들 수 있게 했을 것이다.
주역의 괘들은  그 시절의 도구나 문자등 사회상을 담고 있다.
또한 그러한 불편함을 해소했던 것들을 인간사에도
응용했던 것이다. 옛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괘를 보면서
단순함 속에서 복잡한 인간사를 살피고 그러다 보면 생각이 심플하게 정리된다.

미쁠부(孚)라는 한자는 새가 발로 알의 위치를 바꾸면서 품는 다는 뜻으로
손톱조(새발톱爪)+아들자(새끼,알子)로 이루어진 글자다.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굳은 믿음을 갖고 21일 동안 의심 없는 모성으로 알을
품어서 알이 부화하게 할 때의 믿음인 것이다.
中孚란 가운데 믿음이 있다는 뜻이니 새 둥지와 알 그리고 새를
생각해 보면 상상이 될 것이다.  

"중부라는 말은 괘의 이름이다"
괘의 구성은 (風)겸손함이  (澤)기쁨이 위 아래로 배치된다.
바람은 (巽)겸손함이요 연못은 (兌)기쁨을 뜻한다.
믿음(誠信)이 中心에서 發함을 ‘中孚’라 이른다
믿으면서 바르지 못함은 흉하고 간사한 道이다.
그러므로 바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괘의 육효의 내괘에서부터 외괘로의 (즉 여섯개의 괘 맨 아래에서 부터 차례로
설명하게 되는)내용을 참고로 옮겨보면

初九는 虞吉이니 有它면 不燕하리라  
(初九는 專一한 吉함이니, 다른 것을 구함이 있으면 편안하지 못하리라.)
이미 마음이 하나에 매여 있으므로 다시 다른 것을 구함이 있으면
그와 서로 함께 편안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다른 것을 구함이 있으면 편안하지 못하리라.”라고 한 것이다[正義曰]


九二는 鶴鳴 在陰이어늘 其子和之로다 我有好爵하여 吾與爾靡之로다
(九二는 우는 鶴이 陰地에 있는데 그 새끼가 화답하도다
내가 좋은 관작을 소유하여 내 너에게 흩어주겠다)
안에 처하고 거듭된 陰의 아래에 거하였으나 밟고 있는 것이 中을 잃지 않았으니,
밖을 따르지 아니하여 그 진솔함에 맡기는 자이다.
성실함을 세움이 돈독하고 지극하면 비록 어두운 곳에 있으나 남들이 應한다.
그러므로 “우는 鶴이 음지에 있는데 그 새끼가 화답한다.”라고 한 것이다.
權利를 사사로이 하지 않고 오직 德이 있는 사람에게 줌은 誠信이 지극한 것이다.
그러므로 “내 좋은 관작을 소유하여 남(너)에게 흩어주겠다.”라고 한 것이다.

六三은 得敵하여 或鼓或罷하고 或泣或歌로다
(六三은 敵을 얻어 혹은 북을 치고 혹은 罷하며, 혹은 울고 혹은 노래를 부르도다.)
이기지 못하고 후퇴하면 적에게 침공과 능멸을 당할까 두려우므로 혹은 우는 것이요,
六四가 順을 밟고 있어서 남과 잘잘못을 따지지 아니하여 물러가도 해로움을 받지 않으므로 혹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자기 힘을 헤아리지 않고 나아가고 물러가기를 항상 함이 없게 하면 피곤함을 알 수 있다.

六四는 月幾望이니 馬匹亡이라야 无咎리라
六四는 달이 거의 보름이 되었으니, 말이 짝을 잃어야 허물이 없으리라.
陰德의 盛함이 충만하므로 “달이 거의 보름이 되었다.”라고 한 것이다.
‘馬匹亡’은 여러 동류를 버리는 것이다.
만약 盛한 德의 지위에 거하여 남과 경쟁을 다투면 그 盛한 바를 잃는다.
그러므로 “무리를 끊고 올라가서 正位를 밟고 尊位를 받들어
六三과 다투지 않아야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九五는 有孚攣如라야 无咎리라  
(九五는 孚信이 있어 매어두어야 허물이 없으리라)
‘攣如’는 孚信을 매어둔다는 말이다. 中心이 誠信하여 서로 사귀는 때에 처해서 높은 지위에 거하여 여러 물건의 주체가 되었으니, 誠信을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孚信이 있어 매어두어야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上九는 翰音登于天이니 貞凶하니라
(上九는 날아가는 소리가 하늘에 오르니, 正道가 흉하다)
正義曰:‘翰’은 높이 나는 것이니, 나는 소리는 소리만 날고 실제가 따르지 않음을 이른다. 上九가 信의 끝에 처하였으니, 信이 끝나면 쇠한다.
信이 쇠하면 속임수가 일어나서 忠信과 독실함을 안에서 잃고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밖에서 드날리니, 마치 새의 나는 소리가 하늘로 올라가서 빈 소리가 멀리 들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날아가는 소리가 하늘에 오른다.”라고 한 것이다.
빈 소리여서 실제가 없음은 正道가 凶한 것이다. 그러므로 “正道가 흉하다.”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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