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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은 날
변하지 않는 것이 天性이다. 타고나는 것이다. 고칠 수도 바꿀 수도 없다. 세파에 꿈적하지 않던 젊은 힘이 지탱해주던 시절에는 천성을 여지없이 발현하며 산다 성질 껏 산다. 무모하기까지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천성이 상처를 입고 길을 잃었다. 세월에 탈색된 삶 세월의 채찍에 길들여진 날들 초라함만 있다. 천성은 허울만 있다. 타고남에서 벗어나 한 참을 달려와 있다. 이 때 길 찾음의 답을 노자는 돌아가라고 했다. 그냥 자연으로 돌아가라 자연은 하늘이다. 천명이다. 性이다. 공자는 "率性之謂道" 타고남의 本性을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큰 스승이 있어 길을 말해주어도 쉬이 길에 들지 못하고 겉돈다. 길을 내는 것은 마음이 움틀 때 가능한 일이다. ([心+生] 修道之謂敎)그러나 그러기엔 너무 많이 왔다..
소래산 정상엔 가지않고 산 을 둘러 걸었다. 적당히 걷다 막걸리도 한잔했다. 낙엽이 두툼한 산길은 바람도 없고 따뜻해서 잠시 쉬며 얘기꽃을 피웠다. 산이 있어 만나고 산을 핑계로 소식을 주고받는다. 산 친구들은 그런다. 하는 짓이 같아야, 자주 만나야 , 공감할 마음의 느낌들이 쌓여야 얘기꺼리가 생긴다. 궁금해지고 연락도 한다. 일요일 모처럼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나가 걸었다. 산이 부르면 나가고 산 벗이 찾으면 함께 산에 간다. 올해도 또 다 지나간다. 내 산 사랑은 한 겹 더 두꺼워졌다.
脫 벗어버리다. 육체적인 고통에서 벗어나 기뻐한다는 뜻의 벗을 탈. [肉(月)+兌] 肉脫骨立. 몹시 야위어서 뼈만 드러난 모습을 일러 말하는 사자성어다. 아버지가 그러셨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면 소식에 민감하게 되고 긴장속에 살게된다. 어제 시골 아버님을 뵙고왔다. 시골에서 아버지를 돌보며 지내는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이상하시다고 말씀도 일어나지도 못하신다고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애써 침착하고 동생에게 자세한 상황을 듣고 일단 더지켜보라하고 새벽 눈 뜨자마자 시골로 갔다. 가는 길에 전화를 하며 상황을 물었다. 다행히 어제보다 나아지시고 계신단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지나 고창-담양간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북담양톨게이트로 나가 엊그제 아버님이 잘 드셨던 추어탕집으로 가서 포장을 해 옛 시..
결혼식 참석은 축하의 의미도 있지만 오랫동안 보지 못한 가족. 친구 지인들과 만나는 반가움도 있다. 사촌형은 나 보다 한 살 위인데 초등학교를 같은 해에 입학했다. 난 여덟에 형은 아홉살에 그래서 동창이다. 초등동기들이 같으니 결혼식에 온 친구들도 같다. 결혼식 끝나고 찻집 문 닫도록 시간이 지나서야 우리도 헤어졌다.정말 오랜만에 본 친구들이다. 신반포역 4번 출구 비가 내린다. 예보를 무시 했는데 잘 맞았다. 우산도 없다. 난감하다. 서울 시내는 복잡해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두시간이나 빨리도착했다. 단풍 물든 예식장 주변 시내를 가볍게 걸어볼 생각 이었다. 다행히 편의점이 가까이 보여서 비닐우산(6,000원)을 샀다. 예식장을 찾아 위치를 확인하고 반포천변을 걸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데 광주에서올라..
어제 아침 장인 기일이라 장성 처가에 갔다. 마당에 주차하고 바로 장인 묘소로 가서 인사하고 아내와 처재가 김장할 재료들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고 담양 아버지를 뵈러 갔다. 잠깐 들리긴 했지만 아버님을 뵙고 바로 돌아설 수 없어 저녁을 함께 먹었다. 늘 다니던 떡갈비가 질리기도 해서 아버님께 추어탕을 말씀드렸더니 드시고 싶었다고 하신다. 집에서 가까운 유명한 추어탕집이 문을 닫아서 인터넷 검색을 해 한곳을 갔는데 문을 열지 않았다. 다시 검색해보니 "강의리 추어탕"이라는 유명한 곳이 뜬다. 역시 소문이 맞았다. 식사시간이 어중간한데도 자리가 없다. 시골의 한 복판에 있는 집인데 특이했다. 기다리기 지루했지만 아버님께서 드시고 싶다는 음식이니 주문하고 한참을 기다렸다. 드디어 추어탕이 나왔다. 한 숟갈 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