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흔적

나름 재미있었던 술자리.

運善최명길 2008. 10. 3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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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좋아하진 않지만 멀리하진 않으면 산다.

내 몸에 들어온 술은 바로 빨간 색으로 변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하게 색칠을 해 놓고

정신까지도 그렇게 하려 할 때가 많다.

어제는  술자리를 거절하고 자전거를 챙겨

퇴근을해 저녁을 먹고 쉬는데 전화밸이

울린다. 한번 두번 세번 받지 말까 하다..

받았다.  기다린다 올때까지... 그렇게

몇번의 전화를 받고 단호했던 내 마음이

흔들린다.  술보다는 인간관계였다. 

하늘같은 형님들이 그렇게 전화를 하시는데

어쩔 수 없었다.

선배님들이 계시는 곳에 이르니 

거나하게 한잔 하시면서 종이에  낙서처럼 많은

글을 쓰시고 얘기를 한참 나누신 모양이다.

노사 기정진에 대한 이런 이야기......

 

눈 먼 손자가 나온 노사 기정진의 할머니 묘 황앵탁목혈
(내용 중에 김두규 저 <한국 풍수의 허와 실, 동학사>를 일부분 인용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고향 이야기가 나온 김에 순창군 복흥면에 있는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선생 조모 묘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노사 기정진 선생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조선 성리학의 6대가 중 한사람이며 이 고장 복흥 출신으로, 인근의 장성에서 경학을

공부하려고 전국에서 모여드는 선비들을 가르쳤다.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1489-1546년),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년),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년), 녹문(鹿門) 임성주(壬聖周, 1711-1788년),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6년),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 1818-1886년) 선생을 조선 성리학(性理學)의 6대가로 일컬어 말한다. 눈 하나가 먼 노사 선생은

8,9세에 이미 경서와 사기에 통달했고, 유학에 전심하여 진사에 합격한 후 참봉에서 호조참판까지 여러 번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고향 사람들은 흔히 기참판(奇參判)으로 노사 선생을 부르고 있다. 노사 선생은 다음 일화로 유명하다.

중국에서 조선에 인물이 있는지를 실험하기 위해서 조선 조정에 시 한편을 보내 뜻을 물었다. 인물이 없으면 자신들이 조선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전부터 해오던 조선 조정을 파악하는 방법이다.

"용단호장 오경루하 석양홍(龍短虎長 五更樓下夕陽紅)"
직역을 하자면 "용은 짧고 호랑이는 길다. 오경루 아래 석양은 붉네"

조선 조정에서는 무슨 뜻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 애를 태웠다. 그렇다고 아무런 답변을 해주지 않으면 중국으로부터 무시당할

일이었다. 할 수 없어 사람을 보내 장성에 있는 노사에게 뜻을 물었다. 노사는 글을 읽고 다음과 같은 답을 써 보냈다.

"동해유어 무두무미무척(東海有魚 無頭無尾無脊)
화원서방 구월산중 춘초록(畵圓書方 九月山中 春草綠)"
직역을 하자면 "동해에 고기가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등도 없다. 그림으로 그리면
원으로 둥글고, 글씨로 쓰자면 각이 졌다. 구월산중에 봄 풀이 푸르다."

글 모두 직역만 가지고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두 글은 모두 해(日)를 주제로 표현 한 것이다. 겨울철에는 해가

용을 상징하는 진시(오전 7시정도)에 떠오르므로 해의 길이(낮의 길이)가 짧고, 여름철에는 해가 호랑이를 상징하는 인시(오전 5시정도)에

떠오르므로 해의 길이(낮의 길이)가 길어 용단호장(龍短虎長)이라고 표현 한 것이며 오경루는 중국에 있는 누각으로 석양의 경치를

노래한 것이다. 이에 대한 노사의 시도 마찬가지다. 동해에 떠오르는 해는 고기와 같은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등지느러미도 없다.

그림으로 그리면 둥글고 글씨로 쓰자면 각이 졌다(日자를 암시) 중국은 오경루에 지는 석양이지만 조선은 구월산에 새로 돋아나는

봄 풀이다라고 비교 표현하였다. 시를 보고 중국 사신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며 조선 임금은 서울의 수많은 사람들이 장성 고을의

눈 하나 없는 사람 보다 못하다 하여 `장안만목 불여장성일목(長安萬目 不如長城一目)이라고 하였다.


노사 기정진 선생은 할머니 묘 발복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순창 복흥면 소재지에서 담양 가는 도로로 가다보면 대방리 용지 마을

건너편으로 금방동 들어가는 산길이 나온다. 한참을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을이 나타난다. 금방동은 산이 나선형으로 돌아

감아준 곳이다. 마치 고동(다슬기) 안에 있는 곳과 같다하여 영라하수형(靈螺下水形)이라고 하는데 깊은 산골로 논하나 없지만

옛날부터 부자가 많이 나온 동네다. 마을 뒤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큰 나무 한 그루가 고갯마루에 서있다. 여기서 왼쪽 길로

조금만 가다보면 산 중턱에 석물 하나 없는 봉분이 나타난다. 이곳이 노사 기정진 조모 묘인 황앵탁목혈(黃鶯啄木穴)이다.

황앵탁목혈이란 노란 꾀꼬리가 나무를 쪼는 명당이다.

 

아마도 지난 술자리에서 나왔던 성리학에 대한  뭐 그런 대충...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으셨나 보다.

술자리에 후배도 몇 있었는데 형님 재미 없네요.    그래도 형님이 선배와 11년 차이밖에  안나시기 말씀하셔서 ㅎㅎ

그렇게 술자리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