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좋은 날

春山夜月-于良史(한시감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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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山夜月-于良史(한시감상.)

運善최명길 2007. 3. 11.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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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산야월(春山夜月)-우량사(于良史)

봄산의 달밤-于良史(우량사)

春山多勝事(춘산다승사) : 봄 산에는 좋은 일도 많아

賞玩夜忘歸(상완야망귀) : 느끼고 즐김에 밤 되도록 돌아가길 잊었네

掬水月在手(국수월재수) : 물을 손에 담으니 달이 손에 있고

弄花香滿衣(농화향만의) : 꽃과 같이 노니, 꽃향기가 옷에 가득하네

興來無遠近(흥내무원근) : 흥겨워 먼 곳 가까운 곳 마구 다니다가

欲去惜芳菲(욕거석방비) : 떠나려 하니 향기로운 풀 아쉬워라

南望鐘鳴處(남망종명처) : 남쪽으로 종소리 나는 곳 멀리 바라보니

樓臺深翠微(누대심취미) : 누대가 짙은 푸른 산기운 속에 보이네


<감상1>-오세주

수련을 보자
春山多勝事(춘산다승사) : 봄 산에는 좋은 일도 많아
賞玩夜忘歸(상완야망귀) : 느끼고 즐김에 밤 되도록 돌아가길 잊었네

산문적 의미는 “우연히 봄 산(春山)에 왔더니, 봄 산에는 좋은 일(勝事)이 많기도 하여(多), 감상하며 즐기느라(賞玩) 밤 되도록(夜) 돌아 갈 일도 잊었다(忘歸)”이다

만물이 약동하는 봄날의 산에는 아름답고 기이한 일이 정말 많다.
새로 돋는 파릇한 버들개지, 노란 꽃, 붉은 꽃,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 물소리, 그리고 따뜻한 봄빛, 숨바꼭질하듯 산을 소요하는 동물들,
그 봄 산의 생명을 느끼며 즐기느라 밤이 되도록 집으로 돌아 갈 줄도 몰랐다는 것이다.
세상을 벗어나고 일상을 벗어나 자연에 몰입된 흔하지 않은 경험이 포근하고 경쾌하다

여기서는, 봄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산이라는 공간적 배경에서 작자가 자연에 몰입된 상황적 배경이 제시되었다

함련을 보자
掬水月在手(국수월재수) : 물을 손에 담으니(掬水) 달(月)이 손(手)에 있고(在)
弄花香滿衣(농화향만의) : 꽃(花)과 같이 노니(弄), 꽃향기(香)가 옷(衣)에 가득하네(滿)

산문적 의미는 “물이 너무 맑아 손에 물을 움켜 담으니 달이 내 손 안에 있고, 꽃과 노니 꽃향기가 옷에 가득 베어든다”이다

골짜기를 흐르는 물이 너무 맑아서, 혹은 목이 말라 먹기 위해, 또는 손을 씻기 위해 손에 움켜 담았다. 그러자 뜻밖에도 저 먼 하늘의 달이 내 손 안에 들어있다. 달을 손에 잡은 것이다.
봄꽃의 그 화려함에 취하여, 여기저기 꽃구경에 향기가 옷에 가득 베어들었다

여기서는, 산에서 본 많은 좋은 일 중에서, 대표적인 두 가지를 구체적으로 소개하였다. 그리하여 수련의 시상을 이어갔다

경련을 보자
興來無遠近(흥내무원근) : 흥겨워 먼 곳 가까운 곳 마구 다니다가
欲去惜芳菲(욕거석방비) : 떠나려 하니 향기로운 풀 아쉬워라

산문적 의미는 “흥에 겨워(興來) 먼 곳과 가까운 곳(遠近) 가리지 않고(無) 놀다가, 이곳을 떠나려 하니(欲去) 향기로운 풀(芳菲)이 아쉽기만하다(惜)”이다

봄 산의 좋은 것들을 볼수록 더욱 흥겨워져서, 나는 산의 멀고 가까운 곳을 가리지 않고 구경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덧 날은 어두워지고 공기도 차가워졌다.
산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 살기에는 적당치 않다. 사람은 산에 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산에는 꽃과 나무 그리고 동물들이 사는 곳이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제격이다. 어두워지면 집으로 모여들고 가족과 대화하고 일하는 것이 사람의 일상이다. 날이 어두워지니 작가는 본능적으로 인간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자연에 몰입된 그가 이제 산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려한다. 그러나 낮에 본 향기로운 풀과 꽃을 떠난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여기서, 장면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두워지는 시간의 변화에 의해 산에 몰입된 상태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상황으로 의식이 바뀌어진 것이다

미련을 보자
南望鐘鳴處(남망종명처) : 남쪽으로 종소리 나는 곳 멀리 바라보니
樓臺深翠微(누대심취미) : 누대가 짙은 푸른 산기운 속에 보이네

산문적 의미는 “종소리 나는 곳(鐘鳴處)을 남으로 멀리 바라보니(南望), 산 기운(翠微) 깊은(深) 곳에 누대(樓臺)가 보인다.”이다

날이 어둑해지고 밤기운이 느껴지는 시간은 꿈에서 현실로 또는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이때 저 멀리 어디선가에서 종소리가 들려온다.
종소리는 사람이 울리는 것이다. 사람을 향해 어떠한 의미를 담고 울려퍼지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산속에서 수행을 위해, 또는 어떠한 의미를 가진 신호로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울리는 것이다. 즉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과는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구속인 것이다. 적어도 그것은 인위적인 것이다. 적어도 인간과 인간세계와 관련된 것이다.

여기서는, 결론으로 작가가 세속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연에 몰입된 상태에서 인간이 배제된 일종의 <해탈의 세계를 경험한 것>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생활에 지치거나 패배하면, 수양과 치료를 위해 절을 찾는다. 그러나 절은 아직도 인간의 영역을 완전히 벗난 곳은 아니다. 그 곳에서는 생활에서의 속박을 벗어남을 추구하여, 도의 획득이나 체험이라는 목적을 갖는다. 이는 또 하나의 집착이다. 도를 찾고 경험하기 위해, 승려나 경전이라는 존재에 의하여 인간은 절제와 제한을 요구 받는 곳이다.

그러나 작가가 몰입된 산 속 세계는 인간은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산과 달, 꽃과 나무 등의 자연물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종소리 울리는 저 먼 산기운 짙은 누각이 있는 곳도 속세처럼 보일 뿐인 것이다

작가는 틀림없이 해탈의 세계를 경험하고 온 것이다. 피곤한 삶의 도피처로 단순히 산이나 절에 간 것도 아니고, 심오한 도를 얻기 위해 간 것도 아니다. 산에 간 것은 같되, 우연히 자연과 만나 <진리의 본원에 노닐다 온 희귀한 미적 체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