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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運善최명길 2008. 8. 1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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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고 얻기란 쉽지 않은 일 임을 다시한번 느낀 여행이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해수욕장에 다녀오고 난 뒤라   휴가를 떠나지 않으려 했는데

지난해 단양팔경으로 두루두루 다녔던 게 좋았던지 작년같은 휴가를 보내자고 해

올해는 경주로 가기로 했다.  8월 14일 오후7시30분경에 출발 경주에 도착하니

12가 조금 넘었다.   보문단지안에 있는 펜션마을에  여장을 풀고

아침부터 본격적으로 경주 여행을 시작했다. 

첫번째로 경주박물관에 들렸는데 금관장식등 화려한 유뮬과 에밀레  애절한 사연이

서린 종을 관람하고  왕궁의 비원으로 사용하던 곳에 나중에는 기러기와 오리가 많이

날아들어 살았다하여 雁鴨池(안안지)라고 했다는 신라경순왕과 왕건의 만남이 있었던

안압지를 지나 황남보리빵과 팥이 많이 들어있어 단맛이 꽉찬 황남빵으로 유명한 황남의

황남고분군으로 향했다. 

황남고분군에는어느왕의 무덤인지는 모르지만 유물이 많이 나와 그 빛을 발한

천마도가 그려저 있어 천마총이라 했다는  천마총이 있다.

이곳은 솔밭과 잔디가 잘 가꾸어져 산책하기는 좋았지만 매표소에서 멀어 

여행객의 노곤함에 힘을 보태는 코스였다.

천마총을 나오면 도로 건너편으로 첨성대가 있는데 첨성대까지 이르는 길 옆 이름모를

커다란 무덤들이 볼만하게 자리하고 있다. 

첨성대를 나와 황남보리빵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석굴암을 찾았다.

굽이굽이 돌아 올라갔던 토함산   1979년 수학여행 그때가 생각났다.

석굴암은 감동이었다. 아름답고 정교하고 신비한 알수없는 느낌이 순간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

였다. ( 보존을 위해서 촬영을 금지하고 있어서 사진에 담지는 못했다.) 석굴암을

나와서도 한참을 그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쉬운 이별을 하듯 석굴암을

두고 불국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일주문을 지나니 천왕문이 떡 버티고 서있다.

사천왕이 부릅뜬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절 마다 똑 같다. 다른 모습일까

작은 호수를 지나 만나는 것은 청운교와 백운교가 있는 자하문이다. 부처의 세계로

가는 문이라고 한다.  젊은 청년을 뜻하는 청운교와  흰머리 노인을 뜻하는 백운교가

두개의 층을 이루고 있는데  계단의 수가(청운교17개,백운교16개)33개라고 한다

부처에 이르지 못한 33가지의 단계를 뜻한다고 한다. 자하문 뒤로 대웅전 앞에는

섬세한 여성의 다보탑과 간결하고 말끔한 석가탑이 좌,우로 위치해 있었다. 

수학여행때와 달리 천천히 즐기는 맛이  정말 좋았다.  불국사를 끝으로 경주 여행을

마치고 지도의 호랑이 꼬리가 있는 호미곶에 들러 상생의 손 그 손을 보고 아이들을 위해

구룡포해수욕장에서 잠깐 해수욕을 즐기려 하는데 비가 내려서 포기하고 집으로

올라오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김천쯤 왔을 때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내리는 비를 이길 자신이 없어

김천에서 하루를 보내고 기왕 이렇게 된거 백제의 고도를 향해 달렸다.

김천에서 무주 방향으로  가다보면 신라와 백제의 동서교역의 통로 였다는

나제통문이 나온다. 실제는 일제 강점기에 무주와 김천을 넘나들기

위해 뚫었다는 얘기도 있다. 나제통문을 지나면 무주구천동아래 설천면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의 유래가 재미있다.  조선시대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온 승려의 숫자가 구천명이 넘었단다.

이 승려들이 쌀을 씻으면 계곡물이 하얀 뜨물이 되어 몇 십리를 흘러 갔는데  

마치 눈이 흘러 가는 천 같다고 해 눈설(雪)내천(川) 설천이라고 했다고 한다.

구천명의 승려때문에 무주구천동이라고 했다는 설,  구씨와 천씨가 살았다고 해서

구천동이라고 했다는 설등 아무튼 나제통문을 지나는 순간 신라에서 백제의 시대로 접어든다.

백제의 숨결이 있는 공주, 위례성(한성)에서 장수왕에게 밀려 자리잡은 웅진성(공주)

그 첫번째 백제의 대표적인 고대성곽 공산성, 성왕이 다시 사비성(부여)으로

도읍을 옮긴538년까지 64년간 왕도를 지킨 산성,나당연합군과 대치하던곳이었으며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이었던 공산선 조선시대에는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머물렀 던 곳이기도 하단다.  

공산성(웅진성)은 백제인이 세운 토성이었으나  조선 선조와 인조때 석성으로 다시 쌓았다고 한다.

재성(城)자를 파자해보면 토에 이룰성. 성은 원래 토성이 그 근원이라고 한다.

훗날 석성으로 바뀌었지만 글자의 모양은 그대로다.ㅎㅎ 

우리나라에는 성이 2500여개가 넘는다고 한다.

외세의 침략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렇게 많은 성이 만들어 졌을까 슬프지만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대단한 민족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공산성을 뒤로하고

찾은 무령왕릉은 신라의 왕릉과 달리 석실이 아름다웠다. 금관장식은 간결하고

깔끔하고 멋스러운 모습이었다.  송산리 고분군, 그 안에 무령왕릉이 있는데

고분군 입구에 제현해 놓은 모형을 만들어 관람하도록 되어 있고 실제 무덤은

보존을 위해 막아놓아서   볼 수가 없다.  여행의 마지막장소

부소산성 부소는 백제시대에 소나무를 일겉는 말이라고 한다.  이름에 걸맞게

산성에 소나무가 많아서 시원하고 향이 상큼했다.  부소산성은 공산성이 웅진시대의

산성이라면 부소산성은 사비성시대 왕도를 지킨 산성이다.  돌과 흙을 섞어 다져 쌓은

토석혼축의 토성이라고한다.  이곳에는 삼천궁녀의 슬픈 낙화암이 있고

백제의 폐망의 눈물인 백마강이 흐른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 버린

옛날이 그리웁구나~~~ ,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꿈이 그립구나~ 왜이리도 슬픈가. 한소절씩 불러봤다.

노래에 등장하는 고란사에는 " 갓난아기가된 할아버지 전설"이 전한다.

백제의 소부리라는 마을에 금슬이 좋은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살았는데

아이가 없어 걱정을 하던 할머니 꿈에 도사가 나타나 부소산 고란사 바위에

고란초가 이슬을 머금어 나온 물을 마시면 회춘한다는 말을 듣고 할아버지

에게 그곳에 가서 물을 마시고 오라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않아

찾아가 보니 할아버지 옷을 입은 갓난아기가 있었단다.  그때서야

할머니는  한잔 마실때마다 3년씩 젊어진다고 하는 도사의 말을 할아버지에게

전하지 않은 사실을 깨닳고 아이를 대려가 키웠는데 그아이가 장성해서 백제의

최고의 벼슬인 좌평에 올랐다고 하는 전설이다.

물론 고란사 약수 많이 마실까하다 ㅎㅎ 아내 걱정이되서 한잔만 마셨다.

두어잔 더 마실껄 그랬나..ㅎㅎ 부소산성을 내려오는 것으로 여름여행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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