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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흔적

어느날 찾아온 사랑이...

運善최명길 2006. 11. 2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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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으로 물들던 교정에 낙엽이 지던 날

난 자판기 커피를 한잔 뽑아들고

계단식 정원의 한 벤취에 폼나게 앉아

청춘의 고독을 심하게  씹고 있었다.

사실 영장을 받아 놓고 군대갈 날이 이미

확정된 상황에서 그냥 교정에 나가 빈둥대며

남은 시간을 때우던 시기였다.

그래 책이나 미치도록 읽다가 군대가자

그러면서 마음이 심란해서 들어오지도 않는

활자를 그져 시간에 맡기고 들락 날락하는

후배들과 동료들을 보면서 답답해 

도서관을 나와 벤취에 앉은 것인데......................

그런 내게로 여학생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건냈다.

책을 많이 읽는 내 모습이 좋았는지

이런 저런 그야말로 청춘 시절에만

할 수 있는 쓸대없는 고상한 말들로

긴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길 주고 받았다.

나 또한 그 여학생이 싫지 않았지만

후배여서 그냥 후배려니 하는 마음으로

성심껏 대해 주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난

그 여학생을 만나지 못했다.

입대일이 당겨 지면서

정신없이 군에 입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일병이 되던 어느날

어느 여인으로 부터 편지 한통이 내게로 왔다.

난 그때까지 내겐 편지할 여자는 없다는 생각에

아예 편지를 읽어 보지도 않고 버려버렸다.

그러고 삼개월쯤 지나서 다시 편지가 또 왔단다.

이름도 낮설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여자를 사귀어 본적도 없고 사귈려고 생각해본적도 없던

나 였기에 다시한번 무시하고 군 생활에만 전념했다.

어느날인가 면회실에 날 찾아온 여자가 있단다.

나가지 않고 오랜시간 내무반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가 중대장의 호출로 다시 나가보니

학교에서 만났던 후배였다.

한편으로 반가웠지만 어떤 관계가 형성되지도

않았고 딱한번 벤취에서 그렇게 나눴던 대화외에

그 무었도 없었던 후배인지라 당황 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싫지가 않았다.

난 외출을 허락받고 기차역으로 가서

역전앞 다방에서 예전 처럼 많은 얘기는

나누지 못했지만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서울가는 기차에 후배를 보내고 부대로 들어와

편지를 썼다.  미안함과 고마움의 편지를...

그렇게 시작된 편지는 군대 생활 내내 이어졌고

사랑에 깊이 빠진 나 자신을 발견 할 수 있었다 .

그렇지만 그런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제대하고 다시 학교생활을 하면서는

모른척 그렇게 세월을 보내 버렸다.

아픈 가슴이 사그라 지도록 기다려봐도

잘 되지 않음을 그때 알았다.

그렇게 보낸 시간들 속에 사랑의 간절함이

사무쳐서인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듯 아파온다.

어느날인가 후배가 선을 본다는 말을 듣고

미치듯이 서울로 올라와 사랑을 고백하고

우린 결혼을 했다.   지금의 내 아내가

그 후배다.*^^  결혼 16주년이 되었다.

기약하지 않았던 알 수 없던 날에

벤취에 추억하나가 우릴 이렇게

묶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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