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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몽요결

運善최명길 2016. 4. 28.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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擊蒙要訣(격몽요결)

 

율곡(栗谷) 이이(李珥)

 

擊蒙要訣 序 (격몽요결 서문, 어리석음과 사리에 어두움을 물리치는 가장 중요한 방법)

 

人生斯世 非學問 無以爲人 所謂學問者 亦非異常別件物事也 只是爲父當慈 爲子當孝 爲臣當忠

 

爲夫婦當別 爲兄弟當友 爲少者當敬長 爲朋友當有信 皆於日用動靜之間 隨事各得其當而已 非馳心玄妙 希覬奇效者也 但不學之人 心地茅塞 識見茫昧 故 必須讀書窮理 以明當行之路然後 造詣得正而踐履得中矣 今人 不知學問在於日用 而妄意高遠難行 故 推與別人 自安暴棄 豈不可哀也哉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학문이 아니면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으니, 이른바 학문이라는 것은 또한 이상하거나 일상과 다른 사태가 아니다. 다만 아버지가 되어서는 마땅히 자애롭고, 자식이 되어서는 마땅히 효도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마땅히 진심을 다하고, 부부가 되어서는 마땅히 분별이 있고, 형제가 되어서는 마땅히 우애하고, 젊은이가 되어서는 마땅히 어른을 공경하고, 벗이 되어서는 마땅히 신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날마다 하나하나의 행동과 마주치는 일에 따라 각기 그 마땅함을 얻을 따름이지,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미묘한 경지로 놀려 기이한 효과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배우지 않은 사람은 마음이 욕심으로 꽉 막히고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어둡다. 그러므로 반드시 책을 읽고 이치를 속속들이 파고 깊게 연구하여 마땅히 행하여야 할 길을 밝힌 뒤에야, 학문의 깊은 경지가 올바름을 얻고, 실천함이 치우치지 않는 바름을 얻게 될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학문이 일상생활에 있음을 알지 못하고, 망령되이 높고 멀어서 행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스스로 자포자기(自暴自棄, 자신을 스스로 해치고 버린다는 뜻으로, 몸가짐이나 행동을 되는 대로 취함)함을 편안히 여기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余定居海山之陽 有一二學徒 相從問學 余慙無以爲師 而且恐初學 不知向方 且無堅固之志而泛泛請益 則彼此無補 反貽人譏 故 略書一冊子 粗敍立心飭躬奉親接物之方 名曰擊蒙要訣 欲使學徒觀此 洗心立脚 當日下功 而余亦久患因循 欲以自警省焉

 

내가 해주(海州)의 남쪽에 거처를 정하자, 한두 명의 학도가 함께 찾아와 학문을 물으니, 나는 그들의 스승이 될 수 없음을 부끄럽게 여겼으며, 또 처음 배우는 이가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하고, 굳은 뜻은 별로 없이 대충대충 배우고 더 가르쳐주기를 청한다면, 피차에 도움이 되지 않고 도리어 남의 비방을 살까 두려웠다. 그러므로 간략하게 책 하나를 써서, 마음을 바로잡고 몸을 삼가며, 어버이를 받들고 사람을 대하는 법을 거칠게 늘어놓으니 이름을 격몽요결이라 한다. 학도들로 하여금 이것을 보고 마음을 씻고 몸을 세워 바로 그날로 공부에 착수하게 하려고 하였으며, 나 또한 오랜 게으름을 근심하여 이로써 스스로 경계하고 살피고자 한다.

 

丁丑季冬 德水李珥書

 

정축년(1577) 동계(季冬, 섣달)에 덕수(德水) 이이(李珥) 씀

 

立志章 第一 (입지장 제1, 뜻을 세우기)

 

初學 先須立志 必以聖人自期 不可有一毫自小退託之念 蓋衆人與聖人 其本性則一也 雖氣質不能無淸濁粹駁之異 而苟能眞知實踐 去其舊染而復其性初 則不增毫末而萬善具足矣 衆人豈可不以聖人自期乎 故 孟子道性善 而必稱堯舜以實之 曰 人皆可以爲堯舜 豈欺我哉

 

처음 배우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우고, 반드시 성인이 될 것을 스스로 약속하여, 한 털끝만치라도 자신을 작게 여기고 핑계대려는 생각을 갖지 말아야 한다. 보통 사람이나 성인(聖人)이나 그 본성은 같다. 비록 기질은 맑고 흐림과 순수하고 잡스러움의 차이가 없지 않으나, 진실로 앎을 뚜렷이 하여 실천하여서, 옛날에 물든 나쁜 습관을 버리고 그 본성의 처음을 회복한다면, 털끝만큼을 보태지 않더라도 온갖 선(善)이 갖추어져 넉넉할 것이니, 보통 사람들이 어찌 성인을 넘보지 못하겠는가. 그러므로 맹자(孟子)께서는 인성(人性)의 선(善)함을 말씀하시되 반드시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의 예를 들어 실증하시기를 "사람은 다 요임금과 순임금처럼 될 수 있다."고 하셨으니, 어찌 우리를 속였겠는가?

 

當常自奮發曰 人性本善 無古今智愚之殊 聖人 何故獨爲聖人 我則何故獨爲衆人耶 良由志不立 知不明 行不篤耳 志之立 知之明 行之篤 皆在我耳 豈可他求哉 顔淵曰 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 亦若是 我亦當以顔之希舜爲法

 

마땅히 항상 스스로 분발하여서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善)하여 예나 지금이나, 지혜로우나 어리석으나, 차이가 없거늘, 성인은 어떻게 해서 홀로 성인이 되었으며, 나는 어찌 해서 보통 사람이 되었는가? 이는 진실로 뜻을 세우지 못하고, 아는 것이 밝지 못하며, 행실이 두텁고 성실하지 못함에서 말미암은 것일 뿐이다. 뜻을 세우고, 아는 것을 밝게 하고, 행실을 독실하게 하는 것은 모두 나에게 달려 있으니, 어찌 다른 데서 구하겠는가. 안연(顔淵)이 말씀하시기를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렇게 행한다면 또한 그들과 같아질 것이다.'고 하셨으니, 나 또한 마땅히 안연이 순임금이 되기를 바란 것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人之容貌 不可變醜爲姸 膂力 不可變弱爲强 身體 不可變短爲長 此則已定之分 不可改也 惟有心志 則可以變愚爲智 變不肖爲賢 此則心之虛靈 不拘於稟受故也 莫美於智 莫貴於賢 何苦而不爲賢智 以虧損天所賦之本性乎 人存此志 堅固不退 則庶幾乎道矣

 

사람의 용모는 추한 것을 바꿔 예쁘게 할 수 없으며, 체력은 약한 것을 강하게 바꿀 수 없으며, 신체는 짧은 것을 길게 바꿀 수 없으니, 이것은 이미 정해진 분수(分數)라 고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마음에 품은 뜻에 있어서는 어리석음을 슬기롭게 바꾸며, 못난 것을 어질게 바꿀 수 있으니, 이것은 마음의 허령(虛靈, 잡된 생각이 없이 마음이 신령함)함이 타고난 분수에 구애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으며, 어짊보다 귀한 것이 없거늘, 무엇이 괴로워서 어짊과 지혜로움에 나아가지 아니하여, 하늘이 주신 바의 본성을 훼손하는가. 사람들이 이러한 뜻을 간직하여 굳게 지키고 물러서지 않는다면 도(道)에 가까울 것이다.

 

凡人自謂立志 而不卽用功 遲回等待者 名爲立志 而實無向學之誠故也 苟使吾志 誠在於學 則爲仁由己 欲之則至 何求於人 何待於後哉 所貴乎立志者 卽下工夫 猶恐不及 念念不退故也 如或志不炤 因循度日 則窮年沒世 豈有所成就哉

 

무릇 사람이 스스로 뜻을 세웠다 말하되, 곧장 공부에 힘쓰지 않고 미적거리며 후일을 기다리는 것은, 말로는 뜻을 세웠다 하나 실제는 학문에 대한 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자신의 뜻을 학문에 진실로 향하게 하였다면, 어짊을 행함은 자기 자신에게 비롯되는 것이어서 하고자 하면 바로 이르는 것이니, 어찌 남에게 구하며, 어찌 후일을 기다리겠는가. 뜻을 세움을 귀하게 여김은, 즉시 공부에 착수하여, 오히려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집중하여,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혹시라도 뜻이 성실하고 독실하지 못하여, 몸에 밴 게으름으로 세월을 보낸다면, 수명이 다하여 세상을 마친들, 어찌 성취하는 바가 있겠는가?

 

革舊習章 第二(혁구습장 제2, 오랜 습벽 바꾸기)

 

人雖有志於學 而不能勇往直前 以有所成就者 舊習有以沮敗之也 舊習之目 條列如左 若非勵志痛絶 則終無爲學之地矣

 

사람이 비록 학문에 뜻을 두어 용맹하게 곧바로 나아가도 성취하는 바가 없는 것은, 오랜 습성이 그것을 가로막고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오랜 습성은 아래와 같다. 만약 뜻을 가다듬어 온 힘을 다해 끊어 버리지 않는다면 끝내 배움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其一 惰其心志 放其儀形 只思暇逸 深厭拘束 其二 常思動作 不能守靜 紛紜出入 打話度日 其三 喜同惡異 汨於流俗 稍欲修飭 恐乖於衆 其四 好以文辭 取譽於時 剽竊經傳 以飾浮藻 其五 工於筆札 業於琴酒 優游卒歲 自謂淸致 其六 好聚閒人 圍碁局戱 飽食終日 只資爭競 其七 歆羨富貴 厭薄貧賤 惡衣惡食 深以爲恥 其八 嗜慾無節 不能斷制 貨利聲色 其味如蔗 習之害心者 大槪如斯 其餘 難以悉擧 此習 使人志不堅固 行不篤實 今日所爲 明日難改 朝悔其行 暮已復然 必須大奮勇猛之志 如將一刀 決斷根株 淨洗心地 無毫髮餘脈 而時時每加猛省之功 使此心無一點舊染之汚然後 可以論進學之工夫矣

 

첫째는, 그 마음에 품은 뜻을 소홀히 하고 행동거지를 함부로 해서, 다만 한가하고 편안하기만을 생각하여 얽매임을 깊이 싫어하는 것이다. 그 둘째는 항상 움직일 생각만 하여 고요함을 지키지 못하고, 떠들썩하게 드나들면서 말만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그 셋째는 같은 것을 좋아하고 다른 것을 꺼려하여 유행에 골몰하며, 조금 몸을 깨끗이 하고 언행을 삼가려 하다가도 남들과 어그러질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 넷째는 글짓기를 즐겨 인기를 얻으려 하고, 경전의 구절을 훔쳐서 글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다. 그 다섯째는 글씨 쓰기에 공을 들이고 거문고 타기와 술 마시는 것을 업으로 삼아, 한가히 놀면서 세월을 보내며 스스로 깨끗한 운치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 여섯째는 한가한 사람들을 모아 바둑과 장기를 두면서 배불리 먹는 것으로 날을 보내며, 다만 앞 다툼 맞 다툼을 일삼는 것이다. 그 일곱째는 부하고 귀한 것을 부러워하고, 가난하고 천한 것을 싫어하여,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몹시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그 여덟째는 즐기고 좋아하는 욕심을 절제하지 못해서, 재물과 음악과 여색에 빠져 그 맛을 사탕처럼 달게 여기는 것이다. 습벽이 마음을 해치는 것이 크게는 이와 같으나, 그 나머지는 이루 다 들기 어렵다. 이러한 습벽이 사람의 품은 뜻을 견고하지 못하게 하고, 행실을 독실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 행한 것은 내일이면 고치기 어렵고, 아침에 그 행실을 뉘우쳤다가 저녁에는 이미 다시 그렇게 하느니, 반드시 모름지기 용맹스런 뜻을 크게 분발해서, 마치 장수가 한 칼질로 뿌리와 그루터기를 빠르게 잘라버리듯이 하고, 마음 바탕을 깨끗이 씻어내어 터럭의 뿌리만큼도 없게 하며, 시시때때로 늘 깊이 반성하는 노력을 더하여, 이 마음이 단 한 점의 오래 물든 더러움도 없게 한 뒤에야, 학문에 나아가는 공부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持身章 第三(지신장 제3, 몸을 처신하기)

 

學者必誠心向道 不以世俗雜事亂其志然後 爲學有基址 故 夫子曰 主忠信 朱子釋之曰 人不忠信 事皆無實 爲惡則易 爲善則難 故 必以是爲主焉 必以忠信爲主而勇下工夫然後 能有所成就 黃勉齋所謂眞實心地 刻苦工夫兩言 盡之矣 常須夙興夜寐 衣冠必正 容色必肅 拱手危坐 行步安詳 言語愼重 一動一靜 不可輕忽苟且放過

 

배우는 자는 반드시 참된 마음으로 도를 향하여, 세속의 잡된 일로부터 그 뜻을 어지럽히지 않은 뒤에라야, 학문을 함에 기초가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공자께서 "정성과 믿음을 위주로 한다."하시니, 주자(朱子)께서 이를 풀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정성과 믿음이 없으면 모든 일에 실속이 없어서 악을 행하기는 쉽고 선을 행하기는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정성과 믿음을 으뜸으로 삼는 것이다."하셨으니, 반드시 정성과 믿음으로 으뜸을 삼고 용맹하게 공부를 한 뒤에야 성취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황면재(黃勉齋, 1152-1221, 주자의 제자이자 사위)가 이른 "마음 바탕을 거짓 없이 순수하고 바르게 하여 어려움을 견디며, 몸과 마음을 다하여 가진 애를 쓰라."는 두 마디 말씀에 그 뜻이 모두 들어있다고 할 것이다.

 

常須夙興夜寐 衣冠必正 容色必肅 拱手危坐 行步安詳 言語愼重 一動一靜 不可輕忽苟且放過

 

언제나 반드시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며, 의관을 항상 바르게 하고, 얼굴빛을 반드시 정중하게 하여, 손을 모으고 무릎 꿇고 앉으며, 걸음걸이를 편안하고 조용히 하며, 말은 신중히 하여,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멈춤에 있어서도, 가볍고 소홀히 하여 대충 되는대로 지나쳐 버리지 말아야 한다.

 

收斂身心 莫切於九容 進學益智 莫切於九思 所謂九容者 足容重(不輕擧也 若趨于尊長之前則不可拘此) 手容恭(手無慢弛 無事則當端拱 不妄動) 目容端(定其眼睫 視瞻當正 不可流眄邪睇) 口容止(非言語飮食之時則口常不動) 聲容靜(當整攝形氣 不可出噦咳等雜聲) 頭容直(當正頭直身 不可傾回偏倚) 氣容肅(當調和鼻息 不可使有聲氣) 立容德(中立不倚 儼然有德之氣像) 色容莊(顔色整齊 無怠慢之氣) 所謂九思者 視思明(視無所蔽則明無不見) 聽思聰(聽無所壅則聰無不聞) 色思溫(容色和舒 無忿厲之氣) 貌思恭(一身儀形 無不端莊) 言思忠(一言之發 無不忠信) 事思敬(一事之作 無不敬愼) 疑思問(有疑于心 必就先覺審問 不知不措) 忿思難(有忿必懲 以理自勝) 見得思義(臨財必明義利之辨 合義然後取之) 常以九容九思 存於心而檢其身 不可頃刻放捨 且書諸座隅 時時寓目

 

몸과 마음을 단속하는 데는 구용(아홉 가지 몸가짐)보다 중요한 것이 없고, 학문에 나아가 지혜를 더하는 데는 구사(아홉 가지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이른바 구용이라는 것은, 발을 신중하게 하고(경솔하게 하지 않는다, 웃어른 앞에서 추창趨蹌-예도에 맞게 허리를 굽히고 빨리 걸어감-할 때는 여기에 구애받지 않는다), 손 모양을 공손히 하고(손을 늘어뜨리지 않는다, 일이 없을 때는 마땅히 단정히 손을 모으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눈 모양을 단정히 하고(눈을 자주 깜박이지 않고 마땅히 시선을 바르게 한다, 흘겨보거나 곁눈질해서는 안 된다), 입매는 다물고 있으며(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니면 입을 항상 움직이지 않는다), 소리는 조용히 하고(몸과 기운을 잘 가다듬어 딸꾹질을 하거나 기침을 하는 따위의 잡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머리 모양을 곧게 하고(마땅히 머리를 바르게 하고 몸을 곧게 해야 하며 기울이거나 돌리거나 치우치거나 기대서는 안 된다), 숨 쉬기를 엄숙하게 하고(호흡을 고르게 할 것이요 소리가 나게 해서는 안 된다), 서 있는 모양을 덕스럽게 하고(가운데 서고 치우치지 않아서 장엄하고 엄숙하여 덕이 있는 기상이 있어야 한다), 얼굴 모양을 정중하게 하는 것이다(얼굴빛을 단정히 하여 태만한 기색이 없어야 한다). 이른바 구사(九思)라는 것은, 볼 때는 분명히 볼 것을 생각하고(볼 때 가려진 바가 없으면 밝아서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들을 때는 분명히 들을 것을 생각하고(들을 때 막힌 바가 없으면 귀가 밝아 듣지 못하는 것이 없다), 얼굴빛은 부드럽게 할 것을 생각하고(얼굴빛을 온화하게 펴서 화나거나 미워하는 빛이 없어야 한다), 자태는 공손할 것을 생각하고(일신의 태도가 단정하고 장엄하지 않음이 없게 한다), 말은 정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한 마디라도 정성과 믿음이 없지 않게 한다), 일은 정중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한 가지 일이라도 공경하고 삼가지 않음이 없게 한다), 의심스러우면 물을 것을 생각하고(마음에 의심이 있다면 반드시 선생에게 나아가 깊이 물어서, 모르는 채 그대로 두지 않는다), 화날 때에는 근심을 생각하고(화를 내면 반드시 응징이 따르니 도리로써 이겨낸다), 얻을 것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는 것이다(재물을 대해서는 반드시 의리와 이득의 구분을 밝혀, 의에 합한 뒤에야 취한다). 항상 구용(九容)과 구사(九思)를 마음속에 두고 그 몸을 단속하여, 잠깐 동안이라도 놓아버리지 말 것이요, 또 이것을 앉는 자리의 귀퉁이에 써 두고, 때마다 들여다보아야 한다.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四者 修身之要也 禮與非禮 初學難辨 必須窮理而明之 但於已知處 力行之 則思過半矣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는 네 가지는, 몸을 닦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예와 예가 아닌 것을 처음 배우는 이가 분별하기 어려우니, 반드시 도리를 속속들이 파고들어 깊게 연구하여 밝혀서, 다만 이미 아는 것에 대해서라도 힘써 행한다면 절반은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爲學 在於日用行事之間 若於平居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則是名爲學 讀書者欲明此理而已

 

학문을 한다 함은 날마다 하는 일 사이에 있으니, 만약 평소 거처함에 공손히 하고, 일을 집행하기에 정중히 하고, 남과 더불어 정성껏 하면, 이것을 일러 학문이라 하는 것이니, 책을 읽는 것은 이 이치를 밝히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衣服 不可華侈 禦寒而已 飮食 不可甘美 救飢而已 居處 不可安泰 不病而已 惟是學問之功 心術之正 威儀之則 則日勉勉而不可自足也 의

 

의복은 화려하거나 사치하게 할 것이 아니라 추위를 막을 뿐이요, 음식은 달콤하여 맛이 좋게 할 것이 아니라 굶주림을 면할 뿐이요, 거처는 편안하고 태평하게 할 것이 아니라 병들지 않게 할 뿐이다. 오직 이 학문에 애씀, 마음을 바르게 함, 몸가짐을 가다듬는 법만을 날마다 힘써서 스스로 만족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克己工夫 最切於日用 所謂己者 吾心所好 不合天理之謂也 必須檢察吾心 好色乎 好利乎 好名譽乎 好仕宦乎 好安逸乎 好宴樂乎 好珍玩乎 凡百所好 若不合理 則一切痛斷不留苗脈然後 吾心所好 始在於義理 而無己可克矣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을 억제하는 공부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니, 이른바 극기의 기己라는 것은 내 마음이 좋아하는 바가 천지자연의 도리에 합당하지 않음을 말한다. 반드시 내 마음이 여색을 좋아하는가, 이익을 좋아하는가, 명예를 좋아하는가, 벼슬하기를 좋아하는가, 편안하게 지내기를 좋아하는가, 잔치하고 즐기기를 좋아하는가, 진귀한 보배를 좋아하는가를 검사하여 살펴서, 좋아하는 모든 것이 만일 이치에 합당하지 않거든, 모두 온 힘을 다하여 끊어서 싹과 맥을 남겨두지 않은 뒤에야, 내 마음의 좋아하는 바가 비로소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에 있게 되어서, 극기할만한 것이 없게 될 것이다.

 

多言多慮 最害心術 無事則當靜坐存心 接人則當擇言簡重 時然後言 則言不得不簡 言簡者近道

 

말을 많이 하고 잡념이 많은 것이 마음을 수양하는 공부에 가장 해로우니, 일이 없으면 마땅히 고요히 앉아 마음을 보존하고, 사람을 접하면 마땅히 말을 가려서 꾸밈없이 신중히 하여, 때에 적절하게 말하면 말이 간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말이 간략한 자가 도에 가깝다.

 

非先王之法服 不敢服 非先王之法言 不敢道 非先王之德行 不敢行 此當終身服膺者也

 

옛 어진 임금의 법도에 맞는 옷이 아니면 감히 입지 아니하고, 그 법도에 맞는 말이 아니면 감히 말하지 아니하고, 그 덕행이 아니면 감히 행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마땅히 죽을 때까지 가슴속에 품어 두어야 할 것이다.

 

爲學者一味向道 不可爲外物所勝 外物之不正者 當一切不留於心 鄕人會處 若設博奕樗蒲等戱 則當不寓目 逡巡引退 若遇娼妓作歌舞 則必須避去 如値鄕中大會 或尊長强留 不能避退 則雖在座 而整容淸心 不可使奸聲亂色 有干於我 當宴飮酒 不可沈醉 浹洽而止 可也 凡飮食 當適中 不可快意有傷乎氣 言笑 當簡重 不可喧譁以過其節 動止 當安詳 不可粗率以失其儀

 

학문을 하는 자는 한 결 같이 도를 향함에 있어, 접촉하는 대상이 마음을 이기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외물 중에 바르지 못한 것은 마땅히 일체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인 곳에 만일 장기나 바둑, 주사위 같은 놀이를 벌여 놓았거든, 마땅히 눈을 붙여 보지 말고 뒷걸음질 쳐 물러나고, 만일 기생들이 노래와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만나면 반드시 피해 가야 한다. 만일 마을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 혹 웃어른이 억지로 만류하여 피해 물러갈 수 없다면, 비록 자리에 있을지라도 용모를 단정히 하고 마음을 맑게 하여 바르지 않은 소리와 음란한 빛으로 하여금 나를 침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잔치 자리에 술을 마심에는 몹시 취하면 안 되고, 몸에 술기운이 돌면 그치는 것이 옳다. 모든 음식은 마땅히 알맞게 먹을 것이니, 양껏 먹어 기를 상하게 하지 말 것이다. 말과 웃음은 마땅히 간략하고 신중히 할 것이니, 시끄럽게 떠들어 그 절도를 넘어서지 말 것이며, 행동거지는 마땅히 편안하고 조심스럽게 할 것이니, 거칠고 경솔하게 하여 그 몸가짐을 잃지 말 것이니라.

 

有事則以理應事 讀書則以誠窮理 除二者外 靜坐收斂此心 使寂寂無紛起之念 惺惺無昏昧之失 可也 所謂敬以直內者 如此

 

일이 있으면 사리대로 일에 응하고, 책을 읽으면 정성으로써 이치를 깊이 연구하느니, 이 두 가지 외에는 조용히 앉아 마음을 거두어 들여, 고요해서 어지럽게 일어나는 잡념이 없게 하며, 맑고 또렷이 하여 어둡고 어리석은 실수가 없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니, 이른바 경(敬)으로써 마음속을 바르게 한다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다.

 

當正身心 表裏如一 處幽如顯 處獨如衆 使此心如靑天白日 人得而見之

 

마땅히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겉과 속이 한결같게 하여야 할 것이니, 어두운 곳에 있더라도 드러난 곳에 있는 것처럼 하고, 혼자 있더라도 여럿이 있는 것처럼 하여, 푸른 하늘의 밝은 해를 보는 것 같이 사람들이 내 마음을 알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常以行一不義 殺一不辜而得天下 不爲底意思 存諸胸中

 

항상 한 가지라도 의롭지 못한 일을 행하고,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한다.

 

居敬以立其本 窮理以明乎善 力行以踐其實 三者 終身事業也

 

사람과 사물을 지극히 공손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대하는 상태에 거하여서(居敬) 근본을 세우고,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함으로 선을 밝히고(窮理), 책임감ㆍ사명감ㆍ목적의식을 갖고 자기가 맡은 일에 열심히 노력함으로(力行) 그 진실을 실천하여야 하니, 이 세 가지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사업이다.

 

思無邪 母不敬 只此二句 一生受用 不盡 當揭諸壁上 須臾不可忘也

 

생각이 바르므로 사악함이 없다(詩)와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禮)는, 오직 이 두 글귀는 일생토록 받아서 쓰더라도 끝이 없을 것이니, 마땅히 이것을 벽 위에 써 붙여서 잠깐 동안이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每日 頻自點檢 心不存乎 學不進乎 行不力乎 有則改之 無則加勉 孜孜毋怠斃而後已

 

매일 자주 스스로 마음을 보존하지 않았는지, 학문이 진전되지 않았는지, 행실에 힘쓰지 않았는지 낱낱이 검사하되, 있으면 그것을 고치고, 없으면 더욱 부지런히 하여, 애쓰고 애써서 게을리 하지 말며 죽은 뒤에야 그만둘 일이다.

 

讀書章 第四(독서장 제4, 책 읽기)

 

學者常存此心 不被事物所勝 而必須窮理明善然後 當行之道 曉然在前 可以進步 故 入道莫先於窮理 窮理莫先乎讀書 以聖賢用心之迹 及善惡之可效可戒者 皆在於書故也

 

배우는 자는 항상 이 마음을 보존하여 사물에게 이김을 당하지 않게 하고, 반드시 이치를 속속들이 파고들어 깊이 연구하여 선을 밝힌 뒤에야, 마땅히 행할 도리가 환하게 앞에 드러나니, 그렇게 함으로써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에 들어감은 이치를 속속들이 파고들어 깊이 연구하는(窮理)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고, 이치를 궁구함은 책을 읽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으니, 성현들이 마음을 쓴 자취와, 선과 악의 본받고 경계해야 할 것이 모두 책에 쓰여 있기 때문이다.

 

凡讀書者 必端拱危坐 敬對方冊 專心致志 精思涵泳(涵泳者 熟讀深思之謂) 深解義趣 而每句 必求踐履之方 若口讀而心不體 身不行 則書自書 我自我 何益之有

 

무릇 책을 읽는 자는 반드시 단정히 손을 모으고 무릎을 끊고 앉아서, 정중히 책을 대하여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한 곳으로 모아, 자세히 생각하고 깊이 이해하여(여러 차례 읽고 깊이 생각함), 옳은 뜻을 깊이 이해하고 구절마다 실천할 방법을 찾아야 하니, 만일 입으로만 읽어서 마음에 새기지 않고 몸으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책은 책대로 이고 나는 나대로일 것이니,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先讀小學 於事親敬兄忠君弟長隆師親友之道 一一詳玩而力行之

 

먼저 소학을 읽어,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스승을 높이고, 벗과 친하게 지내는 도리에 대해 하나하나 자세히 익혀서 힘써 실행해야 할 것이다.

 

次讀大學及或問 於窮理正心修己治人之道 一一眞知而實踐之

 

다음에 대학과 대학혹문을 읽어, 이치를 궁구하고(窮理) 마음을 바르게 하며(誠意ㆍ正心), 자기 몸을 닦아(修身) 남을 교화하는 도리에(齊家ㆍ治國平天下) 대해 하나하나 본질을 알아서 성실히 실천해야 할 것이다.

 

次讀論語 於求仁爲己 涵養本原之功 一一精思而深體之

 

다음에 논어를 읽어, 참된 자신을 위해(사사로운 욕망을 극복해) 인을 구하는 공부와, 본성의 근원을 길러 쌓는(함양) 노력을 하나하나 자세히 생각하고 실천하여 깊이 몸에 새겨야 할 것이다.

 

次讀孟子 於明辨義利 遏人慾 存天理之設 一一明察而擴充之

 

다음 맹자를 읽어, 의리와 이익을 밝게 분별하는 것과,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는 설(주자의 설)을 하나하나 밝게 살펴서 확충해야 할 것이다.

 

次讀中庸 於性情之德 推致之功 位育之妙 一一玩索而有得焉

 

다음은 중용을 읽어, 하늘에서 품부된 본성과 오욕칠정이라는 감정의 본질과, 미루어 정성을 다하는(推而極之) 공부와, 천지가 제 자리를 얻고 만물이 낳고 자라는 미묘한 이치(天地位焉 萬物育焉)에 대해 하나하나 깊이 생각하고 찾아내어 얻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次讀詩經 於性情之邪正 善惡之褒戒 一一潛繹 感發而懲創之

 

다음은 시경을 읽어, (시인의) 성정의 그릇됨과 올바름, 선을 칭찬하고 악을 징계함에 대해 하나하나 깊이 생각하여 선한 마음을 감동하여 분발하고 악한 마음을 억제해야 할 것이다.

 

次讀禮經 於天理之節文 儀則之度數 一一講究而有立焉

 

다음에 예경을 읽어, 자연의 법칙은 인간사회에 조절되어 적용되니(禮)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의 구체적인 규칙에 대해 하나하나 좋은 방법을 궁리하여 찾아내 확립해야 할 것이다.

 

次讀書經 於二帝三王治天下之大經大法 一一領要而遡本焉

 

다음에 서경을 읽어, 이제(요임금, 순임금) 와 삼왕(우왕, 탕왕, 문왕ㆍ무왕)이 천하를 다스린 공명정대한 원리와 법칙을 터득해 하나하나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次讀易經 於吉凶存亡進退消長之幾 一一觀玩而窮硏焉

 

다음에 역경을 읽어, 운이 좋고 나쁨과 존속과 멸망, (벼슬을)나아감과 물러섬과 쇠하여 사라짐과 성하여 자라남의 조짐이 드러나는 때나 일에(幾微之際) 대해 하나하나 관찰하고 음미하여 끝까지 연구해야 할 것이다.

 

次讀春秋 於聖人賞善罰惡 抑揚操縱之微辭奧義 一一精硏而契悟焉

 

다음에 춘추를 읽어서 성인의, 선을 상주고 악을 벌하며, 그릇된 행위를 억제하고 훌륭한 행위는 드러내어 칭찬하며, 나쁜 행위는 경계하여 붙들고 좋은 행위는 할 수 있게 풀어주는, 어렴풋한 말씀의 깊은 뜻을 하나하나 자세히 연구하여 정확하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五書五經 循環熟讀 理會不已 使義理日明 而宋之先正所著之書 如近思錄 家禮 心經 二程全書 朱子大全 語類 及他性理之說 宜間間精讀 使義理常常浸灌吾心 無時間斷 而餘力 亦讀史書 通古今 達事變 以長識見 若異端雜類不正之書 則不可頃刻披閱也

 

오서와 오경을 차례로 반복하여 여러 차례 읽어, 깨달아 익히기를 그치지 않고, 뜻과 이치를 날로 밝아지게 하고, 송나라 선대 유학자들이 지은 책인 근사록, 가례, 심경, 이정전서, 주자대전, 어류로부터 기타 성리학설에 이르기까지, 마땅히 틈틈이 자세히 살피어 읽어서, 뜻과 이치가 항상 내 마음에 젖어들어, 어느 때고 쉴 틈이 없도록 하고, 틈이 날 때 또한 역사책을 읽어 옛날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일의 변화 추세에 통달하는 식견을 신장시켜야 할 것이다. 이단 잡류(불가와 도가)의 바르지 못한 책으로 말하면 잠깐 동안이라도 펼쳐 보아서는 안 된다.

 

凡讀書 必熟讀一冊 盡曉義趣 貫通無疑然後 乃改讀他書 不可貪多務得 忙迫涉獵也

 

무릇 책을 읽을 때에는 반드시 한 책을 여러 차례 읽어서 의미를 다 깨달아 꿰뚫어 통달하고 의심이 없는 뒤에야 다시 다른 책을 읽을 것이며, 많이 읽기를 탐하고 얻기에 힘써서 바삐 많은 책을 두루 읽지 말아야 한다.

 

事親章 第五(사친장 제5, 부모 섬기기)

 

凡人 莫不知親之當孝 而孝者甚鮮 由不深知父母之恩故也 詩不云乎 父兮生我 母兮鞠我 欲報之德 昊天罔極 人子之受生 性命血肉 皆親所遺 喘息呼吸 氣脈相通 此身 非我私物 乃父母之遺氣也 故曰 哀哀父母 生我劬勞 父母之恩 爲如何哉 豈敢自有其身 以不盡孝於父母乎 人能恒存此心 則自有向親之誠矣

 

무릇 사람들이 부모에게 마땅히 효도해야 함을 알지 못하는 이가 없지만, 효도하는 자가 심히 드무니, 이것은 부모의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하는 데에서 말미암은 까닭이다. 시경에 이르지 않았는가? "아버님! 나를 낳으시고, 어머님! 나를 기르시니, 그 은덕을 갚고자 하나 하늘처럼 넓고 커서 끝이 없구나" 하였으니, 자식이 생명을 받을 적에 목숨과 살과 피가 모두 어버이가 남겨주신 것이다. 숨을 쉬어 호흡함에 기맥이 통하니, 이 몸은 나의 물건이 아니오, 바로 부모께서 남겨주신 기운이다. 그러므로 시경에 "슬프고 슬프다. 부모여! 나를 낳으시느라 수고로우셨다"라 하였다. 부모의 은혜가 어떠한가? 어찌 감히 저절로 그 몸을 가졌다며,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지 않겠는가? 사람이 능히 항상 이 마음을 둔다면 저절로 부모를 향한 정성이 있을 것이다.

 

凡事父母者 一事一行 毋敢自專 必稟命而後行 若事之可爲者 父母不許 則必委曲陳達 頷可而後行 若終不許 則亦不可直遂其情也

 

무릇 부모를 섬기는 자는 한 가지 일과 한 가지 행실에 있어서도 감히 스스로 혼자서 하지 말아야 하며, 반드시 부모께 명을 받은 뒤에 행할 것이니, 만약 해도 좋을 일을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시거든 반드시 자세히 말씀드려 이해시킨 뒤에 행할 것이요, 만일 끝내 허락하지 않으시더라도 또한 곧바로 하고 싶은 대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每日未明而起 盥櫛衣帶 就父母寢所 下氣怡聲 問燠寒安否 昏則詣寢所 定其褥席 察其溫凉 日問侍奉 常愉色婉容 應對恭敬 左右就養 極盡其誠 出入 必拜辭拜謁

 

매일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웃을 입고, 띠를 띠고서 부모의 침소로 나아가, 기운을 낮추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따뜻한지, 추운지, 편안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여쭙는다. 날이 어두워지면 침소에 나아가 이부자리를 살펴드리고, 겨울에는 따뜻한지와 여름에는 서늘한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하루 동안 받들어 모실 적에 항상 유쾌하고 즐거운 얼굴빛과 순한 몸가짐으로 공경하여 응하고,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고 봉양하여 그 정성을 극진히 하며, 나가고 들어올 적에 반드시 찾아뵙고 절하여야 한다.

 

今人 多是被養於父母 不能以己力養其父母 若此奄過日月 則終無忠養之時也 必須躬幹家事 自備甘旨然後 子職乃修 若父母堅不聽從 則雖不能幹家 亦當周旋補助 而盡力得甘旨之具 以適親口 可也 若心心念念 在於養親 則珍味 亦必可得矣 每念王延 隆冬盛寒 體無全衣 而親極滋味 令人感歎流涕也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에게 양육을 받기만 하고 자기 힘으로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니, 이와 같이 하여 어느덧 세월을 보낸다면, 끝내 정성으로 봉양할 때가 없을 것이다. 반드시 몸소 집안일을 책임지고 맡아 관리하여, 스스로 맛있는 음식을 마련한 뒤에야, 자식 된 도리가 비로소 수행되는 것이니, 만일 부모께서 굳이 들어주지 않으시면, 비록 집안일을 책임지고 맡아 관리하지 못하나, 또한 마땅히 일이 잘 되도록 이리저리 힘을 써서 융통하고(周旋) 보충하여 도와서(補助), 힘을 다해 맛있는 음식을 얻어, 어버이의 입맛에 맞추면 된다. 만약 한결같은 마음이 부모를 봉양하는데 있다면, 진미(珍味)를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왕연(王延, 진晉나라 때의 효자. 계모 복씨卜氏의 학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지성으로 섬겨 결국 복씨가 자신의 소생처럼 왕연을 사랑하게 되었다. 진서晉書,〈孝友傳‧王延〉)이 한겨울 몹시 추운 때에 자기 몸에는 성한 옷이 없었으되 어버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극진하게 대접한 것을 생각하면 항상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하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

 

人家父子間 多是愛逾於敬 必須痛洗舊習 極其尊敬 父母所坐臥處 子不敢坐臥 所接客處 子不敢接私客 上下馬處 子不敢上下馬 可也

 

보통 부자간에 대부분 사랑이 공경보다 지나치니, 반드시 오랜 습관을 힘을 다해 씻어내어 공경하기를 극진히 하여야 한다. 부모가 앉고 누우시는 곳에는 자식이 감히 앉고 눕지 않으며, 부모가 손님을 접대하시는 곳에는 자식이 감히 사사로운 손님을 접대하지 않으며, 부모가 말을 타고 내리시는 것에는 자식이 감히 말을 타고 내리지 않는 것이다 옳다.

 

父母之志 若非害於義理 則當先意承順 毫忽不可違 若其害理者 則和氣怡色柔聲以諫 反覆開陳 必期於聽從

 

부모의 뜻이 만일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옳은 길에 해로운 것이 아니면, 마땅히 부모의 뜻을 먼저 알아차리고 받들어 순종하여 조금이라도 어기지 말 것이요, 만일 의리에 해로운 것이면 기운을 온화하게 하고 얼굴빛을 환하게 하며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간해서, 반복하여 아뢰어 반드시 들어 따르시게 하여야 한다.

 

父母有疾 心憂色沮 捨置他事 只以問醫劑藥爲務 疾止 復初

 

부모께서 병환이 있으시거든 마음으로 근심하고 얼굴빛이 걱정이 가득하여, 다른 일은 버려두고 다만 의원에게 묻고 약을 짓는 일을 힘쓸지니, 병이 그치시거든 처음 하던 일을 회복할 것이다.

 

日用之間 一毫之頃 不忘父母然後 乃名爲孝 彼持身不謹 出言無章 嬉戱度日者 皆是忘父母者也

 

일상 생활하는 사이 잠깐 동안이라도 부모를 잊지 않은 뒤에라야 효도한다고 할 수 있으니, 몸가짐을 삼가지 않으며, 말을 함에 법도가 없이, 장난이나 치면서 세월을 보내는 자는 모두 부모님을 잊어버린 자이다.

 

日月如流 事親 不可久也 故 爲子者 須盡誠竭力 如恐不及 可也 古人詩曰 古人一日養 不以三公換 所謂愛日者 如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어버이 섬기기를 오래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식 된 자는 모름지기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듯 함이 옳다. 옛 사람의 시에 이르기를 “옛날 사람은 부모를 봉양하는 하루를 삼공(三公, 높은 벼슬)과도 바꾸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른바 시간을 아낀다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다.

 

喪制章 第六(상제장 제6, 상례에 관한 제도)

 

喪制 當一依朱文公家禮 若有疑晦處 則質問于先生長者識禮處 必盡其禮 可也

 

상喪-친족이 죽었을 때 그를 추도하기 위하여 일정한 기간 동안 활동을 자제하고 몸가짐을 삼가는 일. 죽은 사람과의 관계가 가까우면 그 기간이 길고, 멀면 기간이 짧다-제는 마땅히 한 결 같이 주자가례를 따라야 하니, 만일 의심스럽거나 모르는 곳이 있거든 선생이나 어른 중에 예(禮)를 아는 곳에 질문해서 반드시 그 예를 다하는 것이 옳다.

 

復時 俗例必呼小字 非禮也 少者則猶可呼名 長者則不可呼名 隨生時所稱 可也 (婦女尤不宜呼名)

 

복(復, 초혼招魂, 사람이 죽었을 때에, 죽은 사람이 생시에 입던 윗옷을 갖고 지붕에 올라서거나 마당에 서서, 왼손으로는 옷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옷의 허리 부분을 잡은 뒤 북쪽을 향하여 ‘아무 동네 아무개 복’이라고 세 번 부르고, 그 옷을 지붕 위에 올려놓거나 사자를 덮어 두었다가 시신이 나간 다음 불에 태운다)을 부를 때에 세속의 관례는 반드시 소자(小字, 어릴 때의 이름)를 부르나 예가 아니다. 어린 사람이면 오히려 이름을 불러도 되지만 어른이라면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된다. 살았을 적에 일컫던 바를 따르는 것이 옳다(복할 때 죽은 사람이 벼슬을 지냈으면 모관모공某官某公이라 하고 여상女喪에는 남편의 직품을 따라 모부인某夫人 모관모씨某官某氏라고 하거나 유인孺人 아무개라고 한다. 부녀자는 더더욱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된다)

 

母喪 父在則父爲喪主 凡祝辭 皆當用夫告妻之例也

 

어머니 상에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아버지가 상주가 되니, 모든 축사(祝辭, 祝文, 제사 때에 읽어 神明께 고하는 글)를 모두 마땅히 남편이 아내에게 고하는 예(例)를 써야 한다.

 

父母初歿 妻妾婦及女子 皆被髮 男子則被髮扱上衽徒跣(小斂後 男子則袒括髮 婦人則髽) 若子爲他人後者 及女子已嫁者 皆不被髮徒跣(男子則免冠)

 

부모님이 돌아가신 직후, 아내와 첩, 며느리와 딸은 모두 머리를 풀고, 남자들은 머리를 풀고 옷깃을 걷어 올리고 맨발을 한다. (소렴小斂-염습斂襲의 첫 번째 단계로 사자의 시신을 옷과 이불로 싸는 절차, 소렴이 끝난 뒤 시신을 묶어서 入棺하는 절차를 대렴大斂이라 한다-을 한 뒤에는 남자는 왼쪽 어깨를 드러내고 머리를 묶으며 부인은 머리를 묶는다) 만일 아들로서 남의 양자가 된 자와 딸로서 이미 출가한 자는 모두 머리를 풀거나 맨발을 하지 않는다(남자는 관을 벗는다).

 

尸在牀而未殯 男女位于尸傍 則其位南上 以尸頭所在爲上也 旣殯之後 女子則依前 位于堂上 南上 男子則位于階下 其位堂北上 以殯所在爲上也 發引時 男女之位 復南上 以靈柩所在爲上也 隨時變位而各有禮意

 

시신이 침상에 있어 빈소를 차리지 않았을 때에는, 남녀가 시신 곁에 자리하게 되면 그 위치는 남쪽을 상석으로 하니, 이는 시신의 머리가 있는 곳을 상석으로 삼기 때문이고, 빈소를 차린 뒤에는 여자들은 앞에서와 같이 당의 위에 자리하되 남쪽을 상석으로 하고, 남자들은 뜰아래에 자리하되 그 위는 마땅히 북쪽을 상석으로 삼아야 하니, 빈소가 있는 곳을 상석으로 삼기 때문이고, 발인(發引, 장례를 지내러 가기 위하여 상여 따위가 집에서 떠남. 또는 그런 절차)할 때에는 남녀의 위치가 다시 남쪽을 상석으로 삼으니, 영구가 놓여있는 곳을 상석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처럼 때에 따라 위치를 바꾸되 각각 그에 적절한 예의 뜻이 있는 것이다.

 

今人 多不解禮 每弔客致慰 專不起動 只俯伏而已 此非禮也 弔客 拜靈座而出 則喪者當出自喪次 向弔客 再拜而哭 可也(弔客當答拜)

 

지금 사람들이 대부분 예를 알지 못하여, 매양 조문객이 위로할 때에 전혀 기동하지 않고 다만 엎드려 있을 뿐이니, 이것은 예가 아니다. 조문객이 영좌(靈座, 영위를 모셔놓은 자리)에 절하고 나오거든 상주는 마땅히 상차(喪次, 喪禮를 치르는 장막)로부터 나와서 조객을 향하여 두 번 절하고 곡함이 옳다(조객도 마땅히 답 절을 해야 한다).

 

衰絰 非疾病服役 則不可脫也

 

최질(衰絰, 상복喪服과 수질首絰, 요질腰紩-최衰는 상복을 말하고, 首絰은 상을 당한 사람이 머리에 묶는 끈, 腰絰은 허리에 묶는 끈을 말한다)은 질병이 있거나 일하는 경우가 아니면 벗지 않아야 한다.

 

家禮 父母之喪 成服之日 始食粥 卒哭之日 始疏食(糲飯也) 水飮(不食羹也) 不食菜果 小祥之後 始食菜果(羹亦可食) 禮文如此 非有疾病 則當從禮文 人或有過禮而啜粥三年者 若是誠孝出人 無一毫勉强之意 則雖過禮 猶或可也 若誠孝未至 而勉强踰禮 則是自欺而欺親也 切宜戒之

 

주자가례에 부모의 상에는 성복(成服, 초상이 나서 처음으로 상복을 입음. 보통 초상난 지 나흘 되는 날부터 입는다)하는 날에 비로소 죽을 먹고, 졸곡(卒哭, 삼우제를 지낸 뒤에 곡을 끝낸다는 뜻으로 지내는 제사. 사람이 죽은 지 석 달 만에 오는 첫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을 택하여 지낸다)하는 날에 비로소 거친 밥(곱게 빻지 않은 곡식으로 지은 밥)과 물만 마시고(국을 먹지 않는다) 채소와 과일을 먹지 않으며, 소상(小祥, 사람이 죽은 지 1년 만에 지내는 제사)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채소와 과일을 먹는다(국물도 먹을 수 있다). 예문(禮文)이 이와 같으니, 질병이 있지 않으면 당연히 예문을 따라야 한다. 사람들 중에는 혹 예법이 지나쳐서 3년 동안 죽만을 먹는 자가 있으니, 만일 효성이 남보다 뛰어나, 조금도 힘써서 억지로 하는 뜻이 없다면 비록 예법을 지나치더라도 그런대로 괜찮지만, 만일 효성이 지극하지 못하면서 힘써 억지로 하여 예법을 어긴다면, 이것은 자신을 속이고 어버이를 속이는 것이니, 의당 절실하게 경계해야 할 것이다.

 

今之識禮之家 多於葬後 返魂 此固正禮 但時人效嚬 遂廢廬墓之俗 返魂之後 各還其家 與妻子同處 禮坊大壞 甚可寒心 凡喪親者 自度一一從禮 無毫分虧欠 則當依禮返魂 如或未然 則當依舊俗廬墓 可也

 

지금의 예법을 아는 집안들이 대부분 장사지낸 뒤에 반혼(返魂, 장례 지낸 뒤에 신주神主를 집으로 모셔 오는 일)하니, 이것은 진실로 바른 예이되, 다만 요즈음 사람들은 남의 흉내를 내어 마침내 여묘(廬墓, 상제가 무덤 근처에서 여막廬幕을 짓고 살면서 무덤을 지키는 일)하는 풍속을 폐하고 반혼한 뒤에 각각 자기 집으로 돌아와 처자식들과 함께 거처하여, 예법이 크게 무너지니 몹시 한심스럽다. 무릇 어버이를 잃은 자는 일일이 예를 따를 수 있는가 스스로 헤아려, 조금도 모자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마땅히 예를 따라 반혼할 것이요, 만일 혹 그렇지 못하면 옛 풍속을 따라 여묘하는 것이 옳다.

 

** 봉분封墳이 완성되면 성분제成墳祭를 지내고 돌아와서 지내는 제의식祭儀式을 반혼제返魂祭 또는 반곡返哭이라고 하는데, 육신은 땅에 묻고 왔으나 혼은 되돌아왔다 하여 반혼이라 한다. 장사를 끝내고 돌아올 때 상여는 분해하여 상여꾼들이 부품을 제각기 메고 온다. 혼교는 분해하지 않고 혼백을 다시 싣고 귀갓길에 오르는데, 혼교 뒤에는 상주들이 곡을 하며 뒤따른다. 혼교(魂轎, 장사葬事 때에, 고인故人이 전생前生에 입던 옷이나 갓을 담아 가는 교자轎子)의 귀갓길은 지름길이 있다 하여도 그 길을 택할 수 없고, 반드시 상여가 갔던 길로 되돌아온다. 그 이유는 상여가 갔던 길과 혼교가 돌아오는 길이 다르면 혼백이 집을 찾아올 때 헤매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혼교가 집에 당도하면 집에 남아 있던 여자 상주들이 대문에 나와 곡을 하면서 맞는다. 혼교가 집에 이르면 혼백을 영좌에 봉안하는 회곡會哭을 하고 재배再拜한다. 이때 축관祝官이 신주를 모셔다가 영좌靈座에 놓으면 주인 이하가 마루에서 곡하다가 영좌 앞으로 나아가서 곡한다. 조상 온 사람이 있으면 처음에 하던 것과 같이 절을 한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부모가 저기 계신 것처럼 생각하여 슬픈 마음이 나면 곡을 한다. 혼백은 빈소(殯所, 발인 때까지 관을 놓아두는 방)에 모신다. 그러면 망자에게 반혼을 고하는 제를 지내는데 이를 반혼제返魂祭라 한다. 앞에 주과포혜(酒果脯醯, 술과 과실과 건포乾脯와 식혜 따위로, 곧 간략한 제물祭物)를 차려 놓고 술을 치고 축을 읽고 상주들이 두 번 절한다. 영좌를 장지에서 반혼하여 와서 혼백을 다시 모시고 난 후부터 담제(禫祭, 초상初喪으로부터 27개월 만에, 곧 대상大祥을 치른 그 다음 다음 달 하순下旬의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지내는 제사祭祀. 부가 생존한 모상母喪이나 처상妻喪의 경우에는 초상(初喪) 후 15개월 만에 지냄)를 지내기 전까지 지내는 각종 제사를 묶어 흉제凶祭라 한다. 기제사忌祭祀 지내기 전의 각종 제사는 담제를 지냄으로써 보통 끝이 난다. 다음으로 우제虞祭를 지내는데, 갓 돌아가신 영혼을 위로하는 뜻으로 지내는 제로 일종의 위령제이다. 우제는 세 번 지내는데, 세 차례 모두 다 그 집안의 기제사 방식(가문에 따라 다름)과 동일하게 지내고 곡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반혼한 혼백을 빈소에 모시며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초우제初虞祭라 한다. 초우제와 반혼제를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초우제는 장사 당일에 지내야 한다. 초우제를 지내고 나면 상주 이하 상제들은 비로소 목욕을 할 수 있지만 빗질은 하지 못한다. 초우제를 지내고 난 다음 날 또는 그 하루 거른 다음 날 아침에 재우제再虞祭를 지낸다. 보통은 초우제 지낸 다음 날 아침에 지낸다. 재우제 바로 다음 날 아침에 삼우제三虞祭를 지낸다. 삼우제를 지내고 나서 상주는 비로소 묘역에 갈 수 있다. 상주는 간단한 묘제墓祭를 올리고 성분成墳이 잘 되었는지 묘역이 잘 조성되어 있는지를 직접 살피고 잔손질을 한다. 최근에 와서는 상기喪期를 단축할 경우 삼우제날 가서 봉분 옆에 흙을 파고 혼백을 묻는데, 이를 매혼埋魂이라 한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한당漢唐 이래로 여묘廬墓에 거처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중에도 여묘한 자가 있어서 정문(旌門, 충신이나 효자ㆍ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하여 그 집 앞이나 마을 앞에 세우던 붉은 문), 작설(綽楔 = 旌門), 홍문(紅門)을 내려 표창한 일이 있었다. 이로부터 여묘하는 것이 풍속이 되어 반혼返魂하는 예법이 없어지고 말았으니 몹시 탄식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말세末世에 와서 예법이 혼란해져서 집으로 반혼하고는 삼가지 않는 일이 많으니 차라리 여묘廬墓하여 혼잡함을 면하느니만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상제가 무덤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살면서 지키게 되면 집으로 반혼返魂하지 않았다.

 

親喪 成服之前 哭泣 不絶於口(氣盡則令婢僕代哭) 葬前 哭無定時 哀至則哭 卒哭後則朝夕哭二時而已 禮文 大槪如此 若孝子情至 則哭泣 豈有定數哉 凡喪 與其哀不足而禮有餘也 不若禮不足而哀有餘也 喪事 不過盡其哀敬而已

 

아버지의 상에 상복을 갖추어 입기 전에는 곡하고 우는 것을 입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고(기운이 다하면 하인으로 대신 곡하게 한다), 장사지내기 전에는 곡을 함에 정한 때가 없이 하여 슬픔이 지극하면 곡하며, 졸곡(卒哭)을 지낸 뒤에는 아침과 저녁 두 때에만 곡할 뿐이다. 예법이 대개 이와 같거니와, 만일 효자가 정이 지극하면 곡하고 우는 것이 어찌 정한 숫자가 있겠는가? 무릇 장례를 지내는 데에는 슬픔이 부족하고 예가 충분한 것이 예가 부족하고 슬픔이 충분한 것만 못한 것이니, 상사는 그 슬픔과 공경을 다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曾子曰 人未有自致者也 必也親喪乎 送死者 事親之大節也 於此 不用其誠 惡乎用其誠 昔者 小連大連 善居喪 三日不怠 三月不懈 期悲哀 三年憂 此是居喪之則也 孝誠之至者 則不勉而能矣 如有不及者 則勉而從之 可也

 

증자가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스스로 정성을 지극히 하는 자가 있지 않으나, 반드시 어버이의 상에는 지극히 해야 할 것이다" 하셨으니, 죽은 이를 장사지내는 것은 어버이를 섬기는 큰 예절이다. 여기에 정성을 쓰지 않는다면 어디에 그 정성을 쓰겠는가. 옛날에 소련小連과 대련大連은 거상을 잘하여 3일 동안 게을리 하지 않고, 세 달 동안 태만히 하지 않고, 1년간 슬퍼하고, 3년 동안 근심하였으니(禮記, 〈雜記下〉), 이것이 바로 거상하는 법칙이다. 효성이 지극한 자는 힘쓰지 않아도 능히 할 수 있거니와, 만일 미치지 못함이 있는 자는 힘써서 예를 따름이 옳다.

 

人之居喪 誠孝不至 不能從禮者 固不足道矣 間有質美而未學者 徒知執禮之爲孝 而不知傷生之失正 過於哀毁 羸疾已作 而不忍從權 以至滅性者 或有之 深可惜也 是故 毁瘠傷生 君子謂之不孝

 

사람이 상을 치를 때에 효성이 지극하지 못하여 예법을 따르지 못하는 자는 진실로 말할 것이 없거니와, 간혹 자질은 아름다우나 배우지 못한 자가 있어 예법만을 행하는 것이 효도가 되는 줄만 알고, 자신의 생명을 손상하는 것이 올바른 도리를 잃는 것임을 알지 못하여, 몹시 슬퍼하여 몸을 상함이 지나쳐, 이미 이질(羸疾, 병들어 지쳐서 몸이 여위는 증상)이 났는데도 차마 권도(權道, 목적 달성을 위하여 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일을 처리하는 방도)를 따르지 않아 생명을 잃는 데까지 이르는 자가 간혹 있으니, 심히 애석하다. 그러므로 몸을 훼손하고 수척하게 하여 생명을 상하게 하는 것을 군자는 불효라 이르는 것이다.

 

凡有服親戚之喪 若他處聞訃 則設位而哭 若奔喪 則至家而成服 若不奔喪 則四日成服 若齋衰之服 則未成服前 三日中 朝夕爲位 會哭(齋衰降大功者亦同)

 

대개 복을 입어야 할 친척의 상에 만일 다른 곳에서 부음을 들었으면 신위(神位)를 설치하고 곡하니, 만일 초상에 달려가야 할 경우이면 그 집에 이르러 성복(成服)을 하고, 만일 초상에 달려가지 못할 경우이면 4일 만에 성복을 한다. 만일 자최(齋衰, 조금 굵은 생베로 짓되 아래 가를 좁게 접어서 꿰맨 상복이다. 부모상에는 삼 년, 조부모 상에는 일 년, 증조부모 상에는 다섯 달, 고조부모 상에는 석 달을 입고, 처상妻喪에는 일 년을 입는다)를 입어야 할 초상이면 성복하기 전 3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신위를 설치하고 모여 곡한다.(자최복으로서 대공大功-9개월-으로 낮추어진 자도 이와 같다)

 

** 오복(五服) - 초상을 당했을 때 망자(亡者)와의 혈통관계의 원근에 따라 다섯 가지로 구분되는 유교의 상복제도(喪服制度). 참최(斬衰)·자최(齊衰)·대공(大功)·소공(小功)·시마(緦麻)의 다섯 가지를 오복이라 한다. 이 오복제도에 정해진 복장은 평상의 복장과는 다르며, 일반적으로 저렴하고 평범한 직물의 자연색을 그대로 사용하고, 그 기원에 있어서도 화禍를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이는 금기禁忌에서 연유한 것이라 볼 수 있다.

 

師友之義重者 及親戚之無服而情厚者 與凡相知之分密者 皆於聞喪之日 若道遠 不能往臨其喪 則設位而哭 師則隨其情義深淺 或心喪三年 或期年 或九月 或五月 或三月 友則雖最重 不過三月 若師喪 欲行三年期年者 不能奔喪 則當朝夕設位而哭 四日而止(止於四日之朝 若情重者則不止此限)

 

스승과 벗 중에서 정의(情誼, 서로 사귀어 친하여진 정)가 무거운 자와, 친척으로서 상복을 입지 않는 관계이지만 정의가 두터운 자와, 무릇 서로 알고 지내는 자로서 교분(交分)이 친밀한 자는, 모두 상을 들은 날에 만약 길이 멀어 그 초상에 가서 참여할 수 없으면 신위를 설치하고 곡한다. 스승일 경우에는 그 정의가 깊고 얕음에 따라 혹은 심상(心喪, 몸에 상복인 베옷을 입지 않고 마음으로 슬퍼한다) 3년, 혹은 1년, 혹은 9개월, 혹은 5개월, 혹은 3개월을 할 것이요, 친구일 경우에는 비록 가장 두터운 관계라 하더라도 3개월을 넘기지 않는다. 만약 스승의 상에 3년복이나 기년복을 행하고자 하는 자가 초상에 참여할 수 없거든 마땅히 아침저녁으로 신위를 설치하고 곡하여, 4일 만에 그친다(나흘째 되는 날 아침에 곡을 그친다. 만약 정의가 두터운 관계일 경우에는 이 한계에서 그치지 않는다).

 

凡遭服者 每月朔日 設位 服其服而會哭(師友雖無服亦同) 月數旣滿 則於次月朔日 設位 服其服 會哭而除之 其間 哀至則哭 可也

 

무릇 상복을 입게 된 자는 매월 초하루에 신위를 설치하고, 입어야 할 상복을 입고 모여서 곡하며(스승이나 친구로서 복이 없는 경우라도 마찬가지이다), 달수가 차고 나면 다음 달 초하루에 신위를 설치하고 입어야 할 상복을 입고 모여서 곡하고 나서 상복을 벗어야 할 것이니, 그 사이에 슬픔이 일어나면 곡하는 것이 옳다.

 

凡大功以上喪 則未葬前 非有故 不可出入 亦不可弔人 常以治喪講禮爲事

 

무릇 대공 이상의 상은 장사를 지내기 전에는 특별한 일이 없거든 밖에 출입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남의 조상(弔喪)도 하지 않을 것이요, 항상 초상을 치르고 예禮를 연구하는 것을 일삼아야 한다.

 

祭禮章 第七(제례장 7, 제사 지내기)

 

祭祀 當依家禮 必立祠堂 以奉先主 置祭田 具祭器 宗子主之

 

제사는 마땅히 주자가례에 따라 반드시 사당祠堂을 세워서 선조의 신주를 받들고, 제전(祭田, 조상의 제사를 받들기 위하여 설정한 묘위토墓位土)을 설치하고 제기를 마련하여 종자(宗子, 종가宗家의 맏아들)가 이를 주관할 것이다.

 

主祠堂者 每晨 謁于大門之內 再拜(雖非主人 隨主人 同謁 無妨) 出入必告

 

사당을 책임지고 맡아 관리하는 자는 매일 새벽마다 대문 안에서 배알(拜謁)하여 두 번 절하고 (주관인이 아니더라도 주관인을 따라 함께 뵙는 것도 무방하다), 나가고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아뢴다.

 

或有水火盜賊 則先救祠堂 遷神主遺書 次及祭器然後 及家財

 

혹 수재나 화재나 도적이 있으면 먼저 사당을 구원하여 신주와 유서遺書를 옮기고, 다음에 제기祭器에 미치고 그런 뒤에 가재家財에 미쳐야 한다.

 

正(正朝) 至(冬至) 朔(一日) 望(十五日) 則參 俗節則薦以時食

 

정월 초하루와 동짓날과 초하루와 보름날이면 사당에 참배하고, 속절(俗節, 명절)이면 그 때에 맞는 음식을 올린다.

 

時祭則散齋四日 致齋三日 忌祭則散齋二日 致齋一日 參禮則齋宿一日 所謂散齋者 不弔喪 不問疾 不茹葷 飮酒不得至亂 凡凶穢之事 皆不得預(若路中 猝遇凶穢則掩目而避 不可視也) 所謂致齋者 不聽樂 不出入 專心想念所祭之人 思其居處 思其笑語 思其所樂 思其所嗜之謂也 夫然後 當祭之時 如見其形 如聞其聲 誠至而神享也

 

시제(時祭, 음력 2월, 5월, 8월, 11월에 가묘에 지내는 제사)를 지낼 경우에는 산제(散齊)를 4일간 하고 치제(致齊)를 3일간 하며, 기제(忌祭, 해마다 사람이 죽은 날에 지내는 제사)를 지낼 경우에는 산제를 2일간 하고 치제를 1일간 하며, 참례參禮할 경우에는 미리 재계(의식 따위를 치르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한 일을 멀리함)하기를 1일간 한다. 이른바 산제라는 것은 남의 초상에 조문하지 않고 질병을 문병하지 않으며, 냄새나는 음식을 먹지 않고 술을 마시되 취하는 데 이르지 않으며, 모든 흉하고 더러운 일에 다 상관하지 않는 것이요(만일 길에서 흉하고 더러운 것을 갑자기 만나면 눈을 가리고 피하여 보지 말아야 한다), 이른바 치제라는 것은 음악을 듣지 않고, 출입하지 않고, 마음을 오로지 하여 제사 지낼 분을 생각하여, 그분이 생전에 생활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며, 웃고 말씀하시던 것을 생각하며, 좋아하시던 것을 생각하며, 즐기시던 것을 생각함을 이른다. 이렇게 한 뒤에야 제사 지낼 때를 맞이하여 그 모습을 보는 듯하고, 그 음성을 듣는 듯하여, 정성이 지극하니 신이 흠향(歆饗, 신명神明이 제물을 받아서 먹음)하는 것이다.

 

凡祭 主於盡愛敬之誠而已 貧則稱家之有無 疾則量筋力而行之 財力可及者 自當如儀

 

무릇 제사는 사랑하고 공경하는 정성을 극진히 함을 중심으로 삼을 뿐이다. 가난하면 가산家産의 있고 없음에 맞추어 할 것이요, 병이 있으면 근력筋力을 헤아려 치르되, 재물과 힘이 미칠 수 있는 자는 스스로 마땅히 예법과 같이 해야 할 것이다.

 

墓祭 忌祭 世俗輪行 非禮也 墓祭則雖輪行 皆祭于墓上 猶之可也 忌祭不祭于神主 而乃祭于紙榜 此甚未安 雖不免輪行 須具祭饌 行于家廟 庶乎可矣

 

묘제(墓祭, 무덤 앞에서 지내는 제사)와 기제忌祭를 세속에서 자손들이 돌아가며 지내고 있으니, 이것은 예가 아니다. 묘제는 비록 돌아가며 지내더라도 모두 묘소에서 제사 지내니 그래도 괜찮지만, 기제는 신주에게 제사 지내지 않고 지방(紙榜, 종잇조각에 지방문을 써서 만든 신주神主)에 제사를 지내니, 이는 매우 미안한 일이다. 비록 돌아가며 지냄을 피치 못하더라도 모름지기 제찬(祭饌, 제사 음식)을 갖추어 가묘에서 지내는 것이 옳을 것이다.

 

喪祭二禮 最是人子致誠處也 已沒之親 不可追養 若非喪盡其禮 祭盡其誠 則終天之通 無事可寓 無時可洩也 於人子之情 當如何哉 曾子曰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爲人子者 所當深念也

 

상례(喪禮)와 제례(祭禮) 두 예는 사람의 자식으로서 가장 정성을 다해야 할 일이다. 이미 돌아가신 어버이를 뒤쫓아 가 봉양할 수 없으니, 만약 상례를 치를 때 그 예를 다하고 제례를 치를 때 그 정성을 다하지 않는다면, 평생 동안 남는 비통함은 붙일 만한 일이 없고 쏟을 만한 때가 없을 것이니, 자식 된 심정으로 마땅히 어떠하겠는가? 증자가 말씀하시기를, “양친兩親의 상사喪事에는 슬픔을 다하고, 제사祭祀에는 공경恭敬을 다하면 백성의 덕이 후한 데로 돌아갈 것이다.”고 하셨으니, 자식 된 자가 마땅히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이다.

 

今俗 多不識禮 其行祭之儀 家家不同 甚可笑也 若不一裁之以禮 則終不免紊亂無序 歸於夷虜之風矣 玆抄祭禮 附錄于後 且爲之圖 須詳審倣行 而若父兄不欲 則當委曲陳達 期於歸正

 

지금 세속이 대부분 예를 알지 못하여 제사 지내는 의식儀式이 집집마다 같지 않으니, 심히 웃을 만한 일이다. 만약 예법으로 통일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문란과 무질서를 피할 수 없게 되어 오랑캐의 풍속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에 제례祭禮를 뽑아 뒤에 붙이고 또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 놓았으니, 반드시 자세히 살펴 이대로 따라 행하되, 만약 부형이 그대로 하려고 하지 않으시거든 마땅히 간곡히 말씀드려 바른 데로 돌아가기를 다짐해야 할 것이다.

 

居家章 第八(거가장 제8, 집에서 지내기)

 

凡居家 當謹守禮法 以率妻子及家衆 分之以職 授之以事 而責其成功 制財用之節 量入而爲出 稱家之有無 以給上下之衣食 及吉凶之費 皆有品節 而莫不均一 裁省冗費 禁止奢華 常須稍存羸餘 以備不虞

 

무릇 집에서 머물 때에는 마땅히 삼가 예법을 지켜서 처자와 집안 식구들을 거느려야 할 것이니, 그들에게 직책을 나누어 주고 할 일을 맡겨 주어 그 성공하기를 요구하며, 재물 씀씀이의 절도를 제정하여, 수입을 헤아려서 지출을 시행하며, 가산의 있고 없음에 맞추어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옷과 음식 및 길사(吉事, 혼례나 환갑 따위의 경사스러운 일)와 흉사(凶事, 초상에서 부터 장례, 상중제사 중에서 초우제, 재우제, 삼우제, 졸곡 전까지-혹은 졸곡 포함-의 모든 의례)의 비용을 지급하되 모두 등급대로 조절하여 균일하지 않음이 없게 하며,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고, 사치와 호화를 금지하여 항상 모름지기 남은 것을 조금씩 보존해 두어 예기치 못한 일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冠婚之制 當依家禮 不可苟且從俗

 

관례(冠禮, 스무 살이 되어 남자는 갓을 쓰고 여자는 쪽을 찌고 어른이 되던 예식)와 혼례(婚禮)의 제도는 마땅히 주자가례에 의거할 것이요, 구차스럽게 세속을 따라서는 안 된다.

 

兄弟 同受父母遺體 與我如一身 視之 當無彼我之間 飮食衣服有無 皆當共之 設使兄飢而弟飽 弟寒而兄溫 則是一身之中 肢體或病或健也 身心 豈得偏安乎 今人 兄弟不相愛者 皆緣不愛父母故也 若有愛父母之心 則豈可不愛父母之子乎 兄弟若有不善之行 則當積誠忠諫 漸喩以理 期於感悟 不可遽加厲色佛言 以失其和也

 

형제는 부모가 남겨 주신 몸을 함께 받아서 나와 더불어 한 몸과 같으니, 형제를 보기를 마땅히 저와 나의 구분이 없게 하여, 음식과 의복의 있고 없음을 모두 마땅히 함께해야 한다. 가령 형은 굶주리는데 아우는 배부르고, 아우는 추운데 형은 따뜻하다면, 이는 한 몸 가운데에 지체(肢體, 팔다리와 몸을 통틀어 이르는 말)가 어떤 것은 병들고 어떤 것은 건강한 것과 같으니, 몸과 마음이 어찌 한쪽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요즘 사람들이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모두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만일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그 부모의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형제가 만일 좋지 못한 행실을 저지르면 마땅히 오랫동안 정성을 쌓아 진정으로 충고해서, 도리로써 스며들듯 깨우쳐 깊이 느껴 깨닫게 하기를 다짐할 것이요, 갑자기 노여운 낯빛과 거슬리는 말을 하여 그 화합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今之學者 外雖矜持 而內鮮篤實 夫婦之間 衽席之上 多縱情慾 失其威儀 故 夫婦不相昵狎而能相敬者甚少 如是而欲修身正家 不亦難乎 必須夫和而制以義 妻順而承以正 夫婦之間 不失禮敬然後 家事可治也 若從前相狎 而一朝遽欲相敬 其勢難行 須是與妻相戒 必去前習 漸入於禮 可也 妻若見我發言持身 一出於正 則必漸相信而順從矣

 

지금의 학자들은 겉으로는 비록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나 속으로 두텁고 성실한 이가 드물어, 부부간의 이부자리 위에서 함부로 성적 욕망을 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하여 그 위의(威儀, 무게가 있어 외경畏敬-공경하면서 두려워함-할 만한 거동擧動)를 잃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부부가 서로 친압(親狎, 버릇없이 너무 지나치게 친함)하지 않고, 능히 서로 공경하는 자가 매우 적으니, 이와 같이 하면서 몸을 닦고 집을 바로 잡고자 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겠는가. 반드시 남편은 온화하게 바른 도리로써 바로잡고, 아내는 유순하며 정직하게 받아들여, 부부 사이에 예의와 공경을 잃지 않은 뒤에야 집안일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종전에 서로 친압하다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공경하자고 한다면 형세로 보아 행해지기 어려우니, 모름지기 부부가 서로 경계하여 반드시 예전의 습관을 버리고 점차 예로 들어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내가 만일 나의 말씨와 몸가짐이 한결같이 올바른데서 나오는 것을 본다면 반드시 점점 서로 믿고 순순히 따르게 될 것이다.

 

生子 自稍有知識時 當導之以善 若幼而不敎 至於旣長 則習非放心 敎之甚難 敎之之序 當依小學 大抵一家之內 禮法興行 簡編筆墨之外 無他雜技 則子弟亦無外馳畔學之患矣 兄弟之子 猶我子也 其愛之 其敎之 當均一 不可有輕重厚薄也

 

자식을 낳으면 조금 지식이 생길 때부터 마땅히 선으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만일 어려서 가르치지 않고 이미 장성함에 이르면, 그른 것을 익히고 방심하게 되어 이를 가르치기가 매우 어려우니, 가르치는 차례는 마땅히 소학을 따라야 할 것이다. 대체로 한 집안에 예법이 성행하고 편지나 책, 글씨 쓰기 이외에 다른 잡기가 없으면, 자제들 또한 밖으로 달려가 배움을 저버리는 근심은 없을 것이다. 형제의 자식은 내 자식과 같으니, 그를 사랑하고 가르치기를 마땅히 한결같이 고르게 할 것이요, 가벼움과 무거움, 두터움과 얇음의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

 

婢僕 代我之勞 當先恩而後威 乃得其心 君之於民 主之於僕 其理一也 君不恤民則民散 民散則國亡 主不恤僕則僕散 僕散則家敗 勢所必至 其於婢僕 必須軫念飢寒 資給衣食 使得其所而有過惡 則先須勤勤敎誨 使之改革 敎之不改然後 乃施楚撻 使其心 知厥主之楚撻 出於敎誨 而非所以憎嫉然後 可使改心革面矣

 

하인들은 나의 수고로움을 대신하니, 마땅히 은혜를 먼저 베풀고 위엄을 뒤에 부려야 비로소 그들의 마음을 얻을 것이니, 임금과 백성과의 이치와 주인과 하인과의 그 이치가 똑같은 것이다. 임금이 백성을 돌보지 않으면 백성이 흩어질 것이니, 백성이 흩어지면 나라가 망하듯이, 주인이 하인을 돌보지 않으면 하인들이 흩어질 것이니, 하인이 흩어지면 집이 망하게 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형세인 것이다. 그런 하인에 대하여 반드시 그들의 추위와 굶주림을 깊이 염려해서 옷과 밥을 대 주어 제자리를 얻게 할 것이요, 허물과 악행이 있으면 먼저 모름지기 부지런히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고치게 하고, 가르쳐도 고쳐지지 않은 뒤에야 회초리를 가해서 그 마음으로 하여금 주인의 회초리가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요, 미워해서가 아님을 알게 하여야 하니, 그런 뒤에야 겉모양을 바꾸고 마음을 고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治家 當以禮法 辨別內外 雖婢僕 男女不可混處 男僕 非有所使令 則不可輒入內 女僕 皆當使有定夫 不可使淫亂 若淫亂不止者 則當黜 使別居 毋令汚穢家風 婢僕 當令和睦 若有鬪鬩喧噪者 則當痛加禁制

 

집안을 다스림에 마땅히 예법으로써 내외를 분별하여 비록 하인이라도 남자와 여자가 뒤섞여 거처해서는 안 된다. 남자 종은 시키는 바가 있지 않으면 함부로 안에 들어갈 수 없게 하고, 여자 종은 모두 마땅히 정한 남편이 있게 하여 음란하게 하지 말아야 하니, 만일 음란한 짓을 그치지 않는 자는 마땅히 내쫓아 따로 거처하게 해서 가풍을 더럽히지 않게 해야 한다. 하인들을 마땅히 화목하게 해야 할 것이니, 만일 싸우거나 다투고, 시끄럽게 떠드는 자가 있거든 마땅히 못하도록 고통을 가해야 한다.

 

君子憂道 不當憂貧 但家貧 無以資生 則雖當思救窮之策 亦只可免飢寒而已 不可存居積豊足之念 且不可以世間鄙事 留滯于心胸之間. 古之隱者 有織屨而食者 櫵漁而活者 植杖而耘者 此等人 富貴不能動其心 故 能安於此 若有較利害計豊約之念 則豈不爲心術之害哉 學者 要須以輕富貴守貧賤爲心

 

군자는 도를 근심할 것이요, 가난을 근심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집이 가난하여 재물로 살아갈 수가 없으면 비록 마땅히 빈궁함을 구제할 대책을 생각하여야 하나 또한 다만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수 있을 뿐이요, 많이 쌓아 두고 풍족하게 살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되며, 또 세간의 비사(鄙事, 더러운 일)를 마음속에 머물러 두어서는 안 된다. 옛날의 숨은 선비 중에는 신을 삼아 팔아서 먹고 산 자와, 땔나무를 하거나 고기를 잡아서 생활한 자와, 지팡이를 꽂아 놓고 김을 매며 산 자가 있었으니, 이런 사람들은 부귀가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에 편안할 수 있었던 것이니, 만일 이해를 따지고 풍성함과 가난함을 헤아리는 생각이 있다면, 어찌 마음을 수양하는 데 해롭지 않겠는가. 배우는 자는 반드시 부귀를 가벼이 여기고 빈천을 지키는 것을 중심(心)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君子憂道 不當憂貧 - 論語, 〈衛靈公〉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도를 도모하고 밥을 도모하지 않는다. 밭을 갊에 굶주림이 그 가운데에 있고, 학문을 함에 녹祿이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니, 군자는 도를 걱정하고 가난함을 걱정하지 않는다’(子曰 君子 謀道 不謀食 耕也 餒在其中矣 學也 祿在其中矣 君子 憂道 不憂貧)’.

 

** 織屨而食者 - 孟子, 〈滕文公上〉신농씨의 말을 하는 허행이 초나라에서 등나라로 가서 궁궐의 문에 이르러 문공에게 아뢰기를 ‘먼 지방 사람이 군주께서 인정을 행하신다는 말을 듣고, 한 자리를 받아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자, 문공이 그에게 거처할 곳을 주니, 그 무리 수십 명이 모두 갈옷을 입고는 신을 두드려 만들고 자리를 짜서, 그것을 팔아 양식을 마련하였다(爲神農之言者許行 自楚之滕 踵門而告文公曰 遠方之人 聞君行仁政 願受一廛而爲氓 文公 與之處 其徒數十人 皆衣褐 捆屨織席 以爲食).

 

** 植杖而耘者 - 論語, 〈微子〉자로가 따라가다가 뒤에 처져 있었는데, 지팡이로 대바구니를 멘 장인을 만나, 자로가 묻기를 ‘노인은 우리 선생님을 보았습니까?’ 하니, 장인이 말하기를 ‘사지를 부지런히 하지 않고 오곡을 분별하지 못하니, 누구를 선생이라 하는가?’ 하고, 지팡이를 꽂아 놓고 김을 매었다‘(子路從而後 遇丈人以杖荷蓧 子路問曰 子見夫子乎 丈人曰 四體不勤 五穀不分 孰爲夫子 植其杖而芸).

 

居家 貧窶 則必爲貧窶所困 失其所守者多矣 學者 正當於此處用功 古人曰 窮視其所不爲 貧視其所不取 孔子曰 小人 窮斯濫矣 若動於貧窶 而不能行義 則焉用學問爲哉 凡辭受取與之際 必精思義與非義 義則取之 不義則不取 不可毫髮放過 若朋友 則有通財之義 所遺 皆當受 但我非乏而遺以米布 則不可受也 其他相識者 則只受其有名之饋 而無名則不可受也 所謂有名者 賻喪 贐行 助婚禮 周飢乏之類 是也 若是大殷惡 人心所鄙惡者 則其饋雖有名 受之 心必不安 心不安 則不可抑而受之也 孟子曰 無爲其所不爲 無欲其所不欲 此是行義之法也

 

집에 거처할 때에 가난하면 반드시 가난함에 곤궁(困窮, 처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난처하고 딱함)함을 당하여 그 지킬 바를 잃는 자가 많다. 바르게 배우는 자는 바로 이런 곳에 힘을 써야 한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곤궁할 때에는 그 하지 않는 바를 살펴보고, 가난할 때에는 그 취하지 않는 바를 살펴본다" 하였고,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소인은 곤궁하면 넘친다(참고 견디지 못하여 도의에 어긋나는 짓을 함)" 하셨으니, 만일 가난에 동요되어 의로움을 행할 수 없다면 학문을 어디에 쓰겠는가? 무릇 사양하고 받으며, 취하고 주는 경우에 반드시 의로운지 의롭지 않은지를 자세히 생각해서, 의로우면 취하고 의롭지 않으면 취하지 아니하여, 털끝만큼이라도 그대로 지나쳐 버리지 말아야 한다. 친구로 말하면 재물을 돌려쓸 의무가 있으니(朋友固有通財之義), 전하는 바를 다 마땅히 받아야 하되, 다만 내가 궁핍하지 않은데도 쌀이나 삼베를 주면 받아서는 안 된다. 기타 서로 아는 자는, 다만 명분이 있는 선물을 받을 것이요, 명분이 없는 것은 받지 말아야 한다. 이른바 명분이 있다는 것은 상사喪事때의 부의賻儀나, 여행 때의 노자나, 혼인 때의 부조扶助나, 굶주림을 구원해 주는 것 등이 이것이다. 만일 대단한 악인으로서 마음에 더럽고 나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 선물이 비록 명분이 있더라도 받으면 마음이 반드시 편안하지 못할 것이니, 마음이 편안치 못하면 억지로 받아서는 안 된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고, 그 하고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자 하지 말라."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의(義)를 행하는 법이다.

 

中朝則列邑之宰 有私俸 故 推其餘 可以周人之急矣 我國則守令 別無私俸 只以公穀 應日用之需 而若私與他人 則不論多少 皆有罪譴 甚則至於犯贓 受者 亦然 爲士而受守令之饋 則是乃犯禁也 古者 入國而問禁 則居其國者 豈可犯禁乎 守令之饋 大抵難受 若私與官庫之穀 則不論人之親疏 名之有無 物之多寡 皆不可受也(若分厚邑宰 以衙中私財周急 則或可受也)

 

중국에는 여러 읍의 수령들에게 사사로운 녹봉(祿俸, 벼슬아치에게 일 년 또는 계절 단위로 나누어 주던 금품을 통틀어 이르는 말. 쌀, 보리, 명주, 베, 돈 따위이다)이 있다. 그러므로 그 중에서 남는 것을 옮겨서 남의 위급함을 도와줄 수 있거니와, 우리나라는 수령들이 별도로 받는 사사로운 녹봉이 없고 다만 공곡(公穀, 나라, 관청 등에서 소유하는 곡식)으로써 일상의 수요를 충당하고 있는데, 만약 사사로이 남에게 준다면 많고 적음을 따질 것 없이 다 죄에 걸려, 심하면 장죄(贓罪, 관리가 뇌물을 받은 죄)를 범하는 데에 이르고, 받은 사람도 또한 그러하니, 선비가 되어 수령의 선물을 받으면 이는 바로 금법을 범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다른 나라에 들어갈 때에도 그 나라에서 금하는 것을 물었으니, 그 나라에 사는 자가 어찌 금법을 범할 수 있겠는가? 수령의 선물은 대개 받기가 어려우니, 만일 국고의 곡식을 사사로이 준다면 관계의 멀고 가까움과 명분의 있고 없음과 재물의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모두 받지 말아야 한다(만일 친분이 두터운 수령이 관아에 있는 사재로 위급함을 도와준다면 받을 수도 있다).

 

接人章 第九(접인장 제9, 사람 대하기)

 

凡接人 當務和敬 年長以倍 則父事之 十年以長 則兄事之 五年以長 亦稍加敬 最不可恃學自高 尙氣凌人也

 

무릇 사람을 대할 때에는 마땅히 온화하고 공경하게 할 것을 힘써야 하니, 나보다 나이가 갑절이 많으면 아버지를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10년이 많으면 형을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5년이 많으면 또한 약간 공경을 더할 것이니, 가장 해서는 안 될 것은 배운 것을 믿고 스스로 고상한 체하며, 기운을 자랑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일이다.

 

擇友 必取好學好善 方嚴直諒之人 與之同處 虛受規戒 以攻吾闕 若其怠惰好嬉 柔佞不直者 則不可交也

 

벗을 가리되 반드시 학문을 좋아하고 선(善)을 좋아하며, 바르고 엄하며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을 취하여, 그와 더불어 거처하여 겸허한 마음으로 바로잡아 주고 경계해 줌을 받아들여 나의 결점을 다스릴 것이요, 만일 게으르고 놀기를 좋아하며 아첨을 잘하고 말재주만 뛰어나고 바르지 못한 자일 경우는 사귀어서는 안 된다.

 

鄕人之善者 則必須親近通情 而鄕人之不善者 亦不可惡言揚其陋行 但待之泛然 不相往來 若前日相知者 則相見 只敍寒喧 不交他語 則自當漸疎 亦不至於怨怒矣

 

마을 사람 중에 선한 자는 반드시 가까이 지내면서 서로 마음을 주고받고, 마을 사람 중에 선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역시 나쁜 말로 그의 더러운 행실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다만 대하기를 데면데면하게(泛然) 하여 서로 왕래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전날에 서로 알고 지내던 자라면 서로 만났을 적에 다만 요즈음의 상황이나 묻고 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는다면, 스스로 마땅히 점점 소원(疏遠, 지내는 사이가 두텁지 아니하고 거리가 있어서 서먹서먹함)해져서 또한 원망하고 노여워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同聲相應 同氣相求 若我志於學問 則我必求學問之士 學問之士 亦必求我矣 彼名爲學問而門庭多雜客 喧囂度日者 必其所樂 不在學問故也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찾게 되니(同聲相應 同氣相求, 周易,〈乾‧文言傳>), 만일 내가 학문에 뜻을 두고 있다면 나는 반드시 학문하는 선비를 찾을 것이요, 학문하는 선비도 또한 반드시 나를 찾을 것이다. 말로는 학문을 한다 하나 문정(門庭, 대문이나 중문 안에 있는 뜰)에 잡객(雜客, 대수롭지 않은 손님)이 많아서 시끄럽게 떠들면서 세월을 보내는 자는 반드시 그가 좋아하는 바가 학문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凡拜揖之禮 不可預定 大抵父之執友 則當拜 洞內年長十午歲以上者 當拜 爵階堂上而長於我十年以上者 當拜 鄕人年長二十歲以上者 當拜 而其間高下曲折 在隨時節中 亦不必拘於此例 但常以自卑尊人底意思 存諸胸中 可也 詩曰 溫溫恭人 惟德之基

 

무릇 절하고 읍(揖, 인사하는 예의 하나. 두 손을 맞잡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공손히 구부렸다가 몸을 펴면서 손을 내린다)하는 예는 미리 결정할 수 없으니, 대개 아버지의 집우(執友, 아버지의 친구)이면 마땅히 절을 해야 하고, 마을에서 나이가 15세 이상인 자에게는 마땅히 절을 해야 하고, 벼슬의 품계가 당상(堂上, 정삼품 상上 이상의 품계에 해당하는 벼슬을 통틀어 이르는 말. 문관은 통정대부, 무관은 절충장군, 종친은 명선대부, 의빈儀賓-부마도위駙馬都尉) 따위와 같이 왕족의 신분이 아니면서 왕족과 통혼한 사람을 통틀어 이르는 말-은 봉순대부 이상이 이에 해당한다)이고 나보다 10세 연상인 자에게는 마땅히 절을 해야 하고, 마을 사람으로서 나이가 20세 이상인 자에게는 마땅히 절하되, 그 사이에 높이고 낮추는 자잘한 예절은 때에 따라 알맞게 할 것이요, 또한 반드시 이 예에 구애될 것은 없으니, 다만 항상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인다는 뜻을 가슴속에 두는 것이 옳다. 詩經에 이르기를 “온순하고 공손한 사람이 덕의 근본이다.”고 하였다.

 

人有毁謗我者 則必反而自省 若我實有可毁之行 則自責內訟 不憚改過 若我過甚微而增衍附益 則彼言雖過 而我實有受謗之苗脈 亦當剗鋤前愆 不留毫末 若我本無過而捏造虛言 則此不過妄人而已 與妄人 何足計較虛實哉 且彼之虛謗 如風之過耳 雲之過空 於我 何與哉 夫如是 則毁謗之來 有則改之 無則加勉 莫非有益於我也 若聞過 自辨 嘵嘵然不置 必欲置身於無過之地 則其過愈甚而取謗益重矣 昔者 或問止謗之道 文中子曰 莫如自修 請益曰 無辨 此言 可爲學者之法

 

사람들 중에 나를 헐뜯고 비방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돌이켜 스스로 살펴야 하니, 만약 나에게 실제로 헐뜯음을 당할 만한 행실이 있었으면 스스로 꾸짖고 안으로 따져서 허물을 고치기를 꺼리 지 말 것이요, 만약 나의 잘못이 매우 미미한데도 불리고 보태어 늘였다면 저의 말이 비록 지나치나 나에게 실제로 비방을 받을 만한 싹과 맥이 있는 것이니, 또한 마땅히 앞서의 잘못을 제거하여 털끝만큼도 남겨 두지 말 것이요, 만 나에게 본래 허물이 없는데 거짓말을 날조했다면, 이는 망령된 사람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망령된 사람과 어찌 거짓과 진실을 따질 것이 있겠는가? 또 저의 헛된 비방은 바람이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구름이 허공을 지나는 것과 같으니,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무릇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헐뜯고 비방함이 올 때에 헐뜯고 비방당할 만한 행실이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욱 힘쓰게 되어 나에게 유익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만약 허물을 듣고 스스로 변명하여 시끄럽게 떠들면서 그대로 버려두지 아니하며, 반드시 자신을 잘못이 없는 처지에 놓으려고 한다면, 그 허물이 더욱 깊어져 비방을 받음이 더욱 무거워질 것이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비방을 그치게 하는 방법을 묻자, 문중자(580~ 617, 이름은 왕통王通, 하동군河東郡 용문현龍門縣 통화진通化鎮 사람으로 자는 중엄仲淹이고, 호는 문중자文中子, 수隋나라의 교육가, 사상가)가 말하기를 “스스로 행실을 닦는 것만 못하다.” 하였다. 다시 더 말해 주기를 청하자, 대답하기를, “변명하지 말라.” 하였으니, 이 말이 배우는 자들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

 

凡侍先生長者 當質問義理難曉處 以明其學 侍鄕黨長老 當小心恭謹 不放言語 有問則敬對以實 與朋友處 當爾義講磨 只談文字義理而已 世俗鄙俚之說 及時政得失 守令賢否 他人過惡 一切不可掛口 與鄕人處 雖隨問應答 而終不可發鄙褻之言 雖莊栗自持 而切不可存矜高之色 惟當以善言誘掖 必欲引而向學 與幼者處 當諄諄言孝悌忠信 使發善心 若此不已 則鄕俗 漸可變也

 

무릇 선생과 어른을 모실 적에는 마땅히 의리(義理, 사람으로서 행해야할 옳은 길) 중에서 깨우치기 어려운 부분을 질문하여 그 배움을 분명히 해야 하고, 마을의 어르신을 모실 적에는 마땅히 조심하고 공손하며 삼가서 말을 함부로 하지 아니하여, 물으심이 있으면 공경히 사실대로 대답하여야 하고, 벗들과 함께 거처할 적에는 마땅히 도의(道義, 道德과 義理,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와 행해야 할 옳은 길)를 강마(講磨, 학문이나 기술을 갈고 닦음)하여, 다만 학문과 의리를 말할 뿐이요, 세속의 더러운 말과, 당시 정치의 잘잘못과, 수령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과, 타인의 허물과 악행을 절대로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하고, 마을 사람과 함께 거처할 적에는 비록 물음에 따라 응답하더라도 끝내 더러운 말을 해서는 아니 되며, 비록 엄숙한 몸가짐을 스스로 지키더라도 절대로 자랑하고 고상한 체하는 기색을 지니지 말고, 오직 마땅히 좋은 말로 타이르고 이끌어서, 반드시 그를 인도하여 학문으로 향하게 하고자 하며, 어린아이와 함께 거처할 적에는 마땅히 간절하게 효제충신(孝悌忠信, 어버이에 대한 효도, 형제끼리의 우애, 임금에 대한 충성과 벗 사이의 믿음)의 도리를 말해 주어 그들로 하여금 착한 마음을 일으키게 해야 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하여 마지않는다면 마을의 풍속을 점점 변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常以溫恭慈愛 惠人濟物 爲心 若其侵人害物之事 則一毫不可留於心曲 凡人欲利於己 必至侵害人物 故 學者先絶利心然後 可以學仁矣

 

항상 온화하고 공손하고 자애로우며 남에게 은혜를 베풀고 남을 구제하는 것을 중심으로 삼아야 할 것이니, 남을 침범하거나 물건에 손해를 끼치는 일과 같은 것은 털끝만큼이라도 마음 한 구석에 두어서는 안 된다. 무릇 사람들이 자기에게 이롭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남을 침해하는 데 이른다. 이 때문에 배우는 자는 먼저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끊어버린 뒤에야 인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居鄕之士 非公事禮見 及不得已之故 則不可出入官府 邑宰雖至親 亦不可數數往見 況非親舊乎 若非義干請 則當一切勿爲也

 

마을에 머물고 있는 선비는 공사나 예의석상에서 만나 보는 것 및 부득이한 연고가 아니면 관청에 드나들어서는 아니 되니, 마을 책임자가 비록 지극히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또한 자주 찾아가 만나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친구가 아님에 있어서이겠는가? 도리에 맞지 않는 청탁 같은 것은 마땅히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處世章 第十(처세장 제10, 세상에 어울리기)

 

古之學者 未嘗求仕 學成 則爲上者 擧而用之 蓋仕者 爲人 非爲己也 今世則不然 以科擧取人 雖有通天之學 絶人之行 非科擧 無由進於行道之位 故 父敎其子 兄勉其弟 科擧之外 更無他術 士習之偸職 此之由 等今爲士者 多爲父母之望 門戶之計 不免做科業 亦當利其器 俟其時 得失付之天命 不可貪躁熱中 以喪其志也

 

옛날의 학자들은 일찍이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되 학문이 이루어지면 윗사람이 된 자가 천거해서 등용하였으니, 벼슬하는 것은 남을 위하는 것이요,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세상은 그렇지 아니하여, 과거科擧로써 사람을 뽑아, 비록 하늘의 이치를 통달한 학문과 남보다 빼어난 행실이 있더라도 과거가 아니면 치도(治道, 다스리는 도리나 방법)를 실천할 수 있는 지위에 나아갈 길이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아들에게 시키고 형은 아우에게 권하여, 과거 이외에는 다시 다른 방법이 없으니, 선비들의 습관이 각박해지는 것은 오로지 이에 연유한다. 다만 요즘 선비가 된 자들은 대부분 부모의 바람과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門戶之計)를 위하여 과거공부를 함을 피할 수 없으니, 다만 마땅히 그 그릇을 갈고 닦으며 그 때를 기다릴 뿐, 급제와 낙방을 천명에 맡길 것이요, 벼슬을 탐하고 조급해 하고 마음을 끓어오르게 해서 자신의 뜻을 손상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人言科業爲累 不能學問 此亦推託之言 非出於誠心也 古人養親 有躬耕者 有行傭者 有負米者 夫躬耕行傭負米之時 勤苦甚矣 何暇讀書乎 惟其爲親任勞 旣修子職 而餘力學文 亦可進德 今日之爲士者 不見爲親任勞如古人者 只是科業一事 是親情之所欲 今旣不免做功 則科業 雖與理學不同 亦是坐而讀書作文 其便於躬耕行傭負米 不翅百倍 況有餘力 可讀性理之書哉 只是做科業者 例爲得失所動 心常躁競 反不若勞力之不害心術 故 先賢曰 不患妨功 惟患奪志 若能爲其事而不喪其守 則科業理學 可以並行不悖矣 今人 名爲做擧業而實不著功 名爲做理學而實不下手 若責以科業 則曰 我志於理學 不能屑屑於此 若責以理學 則曰 我爲科業所累 不能用功於實地 如是 兩占便宜 悠悠度日 卒至於科業理學 兩無所成 老大之後 雖悔 何追 嗚呼 可不戒哉

 

사람들이 말하기를 “과거공부에 매여서 학문을 할 수 없다”고 하니 이 또한 미루어 핑계 대는 말이요, 진정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옛날 사람은 부모를 봉양함에 몸소 밭을 갈았던 이도 있었으며,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품팔이한 이도 있었으며, 쌀가마니 지는 일을 한 이도 있었으니, 몸소 밭 갈고, 다니며 품팔이하고, 쌀가마니를 질 때에 근로와 고생이 심하였을 것이니, 어느 겨를에 글을 읽었겠는가? 오직 그 부모를 위해 수고로움을 스스로 맡아 이미 자식의 직분을 닦고 남은 여가에 글을 배웠는데도, 또한 덕에 나아갈 수가 있었는데, 요즈음 선비 된 자들은 어버이를 위하여 수고로움을 맡기를 옛날 사람과 같이 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다만 과거 공부라는 한 가지 일이 곧 어버이의 마음이 바라는 것이라 하여, 이제 처음부터 (과거) 공부를 면할 수 없는 것이니, 그렇다면 과거공부가 비록 이학(理學, 성리학性理學, 중국 송宋 대의 유학)과는 같지 않으나 역시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짓는 것이어서 몸소 밭 갈고, 다니며 품팔이하고, 쌀가마니를 지는 일보다 편함이 백배가 넘는다. 하물며 남은 시간에 성리(性理)에 관한 책을 읽을 수 있었음에랴. 다만 과거공부를 하는 자들은 으레 과거에 급제하느냐 낙방하느냐에 동요되어 마음이 항상 조급히 굴면서 남과 다투니, 도리어 수고롭게 일해서 마음을 수양하는 공부를 해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선현의 말씀에 “공부에 방해될까를 걱정하지 말고, 오로지 뜻을 빼앗길까를 걱정해야 한다”고 하셨으니, 만약 과거 공부하는 일을 하면서도 지켜야 할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과거 공부와 이학 공부를 병행해도 서로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말로는 과거 공부를 한다 하나 실제로는 과거공부를 하지 않고, 말로는 이학 공부를 한다 하나 실제로는 착수하지 아니하여, 만약 과거 공부로써 질책하면 말하기를 “나는 이학에 뜻을 두고 있어서 이런(屑屑於此, 이와 같은 자질구레한 일) 일을 할 수 없다.”고 하며, 만약 이학 공부로써 질책하면 말하기를 “나는 과거공부에 얽매여서 실지(實地, 실천實踐과 수양修養)에 힘을 쓸 수가 없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와 같이 양쪽으로 편리한 처지를 차지하여, 하는 일 없이 하루하루 세월만 보내다가 마침내는 과거 공부와 이학 공부 두 가지 다 이루는 바가 없음에 이르니, 늙은 뒤에 비록 뉘우친들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아!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人於未仕時 惟仕是急 旣仕後 又恐失之 如是汨沒 喪其本心者 多矣 豈不可懼哉 位高者 主於行道 道不可行 則可以退矣 若家貧 未免祿仕 則須辭內就外 辭尊居卑 以免飢寒而已 雖曰祿仕 亦當廉勤奉公 盡其職務 不可曠官而餔啜也

 

사람들이 아직 벼슬하지 않을 때에는 오직 벼슬하는 것을 빨리 처리하여야 할 일로 여기고, 이미 벼슬에 오른 뒤에는 또 벼슬을 잃을까 걱정하니, 이와 같이 골몰하여 그 본심을 잃는 자가 많다. 어찌 두려워할 만하지 않겠는가? 지위가 높은 자는 도(道,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를 베푸는 것을 중심으로 삼아야 하니, 도가 베풀어질 수 없으면 물러나야 할 것이요, 만일 집이 가난하여 녹봉을 받기 위한 벼슬을 면치 못한다면, 모름지기 내직(內職, 서울에 있던 여러 관아의 벼슬을 통틀어 이르던 말)을 사양하고 외직(外職, 지방에 있는 감영監營, 부府, 목牧, 군郡, 현縣의 병영兵營과 수영水營 따위에 속한 문관과 무관을 통틀어 이르는 말)으로 나가며, 높은 자리를 사양하고 낮은 자리에 머물러서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뿐이다. 비록 녹봉을 받기 위한 벼슬이라고 하나 또한 마땅히 청렴하고 부지런히 공무를 받들어 행하여 그 직무를 다해야 할 것이요, 직분을 버려두고 먹고 마시려고만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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