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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運善최명길 2018. 6. 1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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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도덕성에 대한 가치관이 무너지고 인간상실의 철학에 빠진 세계대전 전후의

사상을 정리한 실존주의 철학의 명제부조리관한 소설이다.

알베르까뮈의 이방인몇 번 읽었지만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사실 쉽지 않은 내용이다.

1942년 그가 만29세 우리나이로는 30세에 쓴 소설이다.

일단 소설을 읽기전에 부조리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까뮈의 소설은 인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완전히 알 수 없고,

모든 일을 완전히 해낼 수도 없으며,

반드시 죽기 마련이며 인간은 죽음이라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

영원'에 대한 환상을 품는다거나,

다가올 내일에 대해서 희망을 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한다.

 

인간이 미래를 위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결국 미래는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죽음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라는

부조리를 이해하고 소설을 읽어야 조금은 이해가 갈 듯 하다.

철학에서는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을 부조리라고한다.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의 감정이나 감각에 빠져 절망이나 자살에 이르는 허무주의를 긍정하는

대신 인간과 세계, 의식과 현실의 긴장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반항적 인간'의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알베르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 인간

'부조리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인간',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인간'이라는 뜻이지

'부조리한 인간'이라는 뜻은 아니다

인간이나 세계가 그 자체로서 부조리한 것은 아니다.

이성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상태가 바로 부조리한 상태이다

  소설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평범한 직장인 뫼르소에게

요양원에 모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가 전달된다.

직장인 답게 사장에게 사정을 말하고 모친 장례를 치르러 가는데도

사장은 눈치를 주지만 뫼르소는 이틀간의 휴가를 내고 모친의 장례를

치르러 고향의 요양원을 찾아간다.

요양원 원장은 불친절하게 몇가지 확인하고 장례절차를 설명해 주고

모친의 시신을 한번 보겠냐고 뫼르소에게 묻는다  뫼르소는 보지 않겠다고 한다.

그날밤 모친의 시신이 있는 요양원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문상객들을

맞는데 문상객이 찾는 것도 뫼르소는 귀찮고 달갑지가 않다.

마지막으로 입관을 하면서 모친의 얼굴을 보겠냐고다시 물어도

뫼르소는 거절하고 더운 여름날 장례는 모친의 친구분들이 뒤따르며

오열하는 가운데 장례를 치르지만 뫼르소는 덥고 힘들기만하다.

뫼르소는 돌아가신 어머니 얼굴을 보려고도 하지않고

슬퍼하지도 않으며 외려 장례를 치르며 기다리는 시간과

생전의 모친의 친구분들의 문상도 귀찮은 사람이다.

장례를 치르자마자 옛 직장동료 마리를 만나 물놀이를 가고 그녀와

정사를 나누고 영화를 보고 일상을 즐긴다. 

모친에 대한 슬픔과는 아무 상관 없는 뫼르소

그의 주변엔 털이숭숭빠진 개와 늘 함께 다니는 살라미 영감이

있고 그가 개를 잃어버려 걱정을 할 때 조언을 해주고 살라미 영감은

평소에 개를 구박하면서도 막상 개를 잃어버리고 상실감에 젖는 것을

보고 그가 아내와 사별한 뒤 그 개와 함께 벗하며 늙어 온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평범한 청년이기도하다.

아랫집 사는 레이몽이 돈을 대주며  그와 함께 사는 여자가

그를 속이고 돈만 뜯어 낸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골탕을 먹이는 일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뫼르소가 좋다고 친구하자고 하니 친구가되고 레이몽을 돕다가

레이몽에게 앙갚음 하려는 아랍인을  죽이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해변에서 아랍인이 작은 칼을 꺼낼 때 강렬한 햇살이 뫼르소의 눈을 자극하고

뫼르소는 자기도 모르게 총을 쏘게 되고 그로인해 아랍인이 죽게되는 사건이다.

뫼르소는 단순히 칼에 반사된 햇살 때문에 총을 쏴서 사람을 죽이게 되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뫼르소는 감옥에 갇히게 되고 변호사와 검사는 사회가 정한 법과 질서에 따라

뫼르소의 의지와 상관없이 죄에 대한 심판을 한다.

뫼르소가 말을 하려고 하면 변호사는 말을 막고 기자들은 기사를 쓰기위해 오로지 기삿거리로만

사건을 본다.

뫼르소는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었다.

모친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고 살인한 사실에 대해 통렬히 반성한다는 말을 통해

판사의 동정을 이끌어 내려고 하는 변호사와 달리 뫼르소는 냉소적이다.

뫼르소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단지 나는 예의상 혹은 절차상 해야 하는 말이나 행동을 싫어 할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나는 당연히 그래 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달리 말하면 나는 그 누구보다도 솔직한 사람이다.

이렇 듯 도덕과 관습에 강력한 지배를 받는 세상에서

솔직하게 사는 게 오히려 훨씬 더 번거롭고 힘들다.

그러나 뫼르소의 생각이나 사실과 상관없이

검사는 이 사건과 아무런 관계없는 모친의 장례때의 뫼르소의 태도와 모친을 모시지않고  요양원에 보내버린 못된 자식

아랍인을 죽인 살인자 그것도 살인의 이유가 강렬한 햇살 때문이라고 하는 파렴치한이니 강력한 처벌을 해야한다고한다.

변호사는 뫼르소는 착한 아들이요 그가 평범한 청년임을 입증할 이웃들 레이몽과 살라미영감그리고 그의 여친 마리를 불렀다. 

그들은 뫼르소가 내성적이긴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말을 해 보지만

검사는 모친을 요양원에 모신것과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

장례 치르자 마자 마리와 밀회를 즐기는 등 도저히 정상이 아닐 뿐 아니라 아랍인을 향해

총을 네발이나 쐈다는 것을 근거로 사형을 구형한다.

그는 사형을 언도 받은 사형수가 된다.  그는 오히려 감옥에서 편안함을 맛본다. 

 변호사가 상고 해 아마 사형을 면하게 되려는지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갖기도 하지만 그 도 한순간

모든 것을 내려 놔 버린다

그런데 감옥으로 신부가 찾아와 면회를 요구를 하고 뫼르소는 번번히 거절한다.

그러자  신부가 일방적으로 좁은 감옥안으로 들어와 뫼르소와 얘기를 섞어보려고 한다.

그렇지만 뫼르소의 냉소적인 태도에 금방 지쳐 버리고 긴 한숨으로 말을 잇는다.

 

감옥의 벽을 보면서

 

이 모든 돌 들엔 괴로움이 배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압니다.

나는 번민 없이 이것들을 바라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마음 속 깊이

당신들 중의 가장 불행한 사람일지라도

이 돌 들의 어둠으로부터 성스러운 얼굴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보기를 요구하는 것은 그 얼굴입니다'

뫼르소는 화가났다.

여러 달 전부터 나는 감방의 벽을 들여다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내가 그보다 더 잘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래 전부터 나는 그곳에서 하나의 얼굴을 찾아보려 했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태양의 빛깔과 정욕의 불길을 가졌을뿐이었다.

그것은 마리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찾으려했었으나 헛된 일이었다. 이제는 그것도 지나간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 축축한 돌에서 아무것도 솟아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뫼르소의 허위의 도덕을 강요하는 인간들에 대한 거부가 드러나 있다.

세상에 대한 자각도 없이 수동적인 권태감에 빠져 살던 평범한 주인공 뫼르소는

단순히 태양 빛 때문에 우발 살인을 한 후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인생에 대해 무관심 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

인간은 이 세계가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하고,

기 운명의 불합리함에 대해 끊임없이 반항함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는 소설의 끝에서 마지막 생의 극치를 위하여 내가 덜 외롭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끔

내 사형이 집행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증오에 찬 고함소리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라고 글을 맺는다.

 

까뮈는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왜 사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을 때 사람들이 취하는 반응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는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자살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일상으로 돌아와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세 번째는 운명에 도전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반항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 중 마지막 반응은 비극적 결말을 낳는다고 했다.

부조리란 논리로써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감정으로써 느낄 수 있을 뿐이다"라고 부조리를 규정하면서

인간은 부조리한 세계에 대하여 좌절을 각오하고 인간적인 노력을 거듭하여 가치를 복권해야 한다고 까뮈는 말한다.

 

소설이 많이 어렵다. 

그렇지만 곱씹어 읽다보면

우리네 모습이  투영되는 것을 알 것 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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