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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은 날
봄날 아침 산책길에 본문
꽃샘추위가 만만치 않다.
모처럼 아침 산책을 나섰다.
동네 작은 동산 범박산에는 진달래가 활짝펴서
이미 봄이 와 있었다.
먼 옛날 왕소군의 일화로 유명해진 꽃 샘 추위때마다 나오는 말
춘래불사춘 한나라 황실의 자손으로 흉노로 시집간 왕소군이
오랑캐나라에 봄이와도 꽃이 없어서 어 봄이 봄같지 않다는 말을 남겨서
유래했다고한다.(유래에 대한 소개는 아래 정리해둔다)
우리동네는 꽃샘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매화가 피더니 개나리피고 진달래까지 봄꽃이 지천에 폈다.
한나라의 힘이 약해지고 흉노가 강성해지자 흉노는 여인들을 바치게 했는데
한원제는 화가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고 못 생긴 여인들을 골라
흉노에 보냈다고 한다.
한원제는 많은 궁녀들 중 누구와 동침할지 미리 정하기 위하여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는데
궁녀들이 황제의 총애를 받기 위해 화가에게 뇌물을 앞다퉈 주었다고 합니다.
정직한 성격의 왕소군은 뇌물을 내지 않아 추한 초상화를 받았고
내심 흉노에게 여인을 바치는게 아까웠던 원제가 가장 추한 여성을 고르게 됨으로써
왕소군이 시집가게 되었습니다.
훗날 왕소군에 대한 사실을 알고 초상화를 그린 화가를 처형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렇게 추운 낯선땅으로 끌려가다시피 시집간 왕소군이지만
어질고 지혜로운 품성 덕에 흉노에서도 유복한 생을 보냈고
한족 문화를 흉노에 전파하여 교화하는데 힘썼다고 합니다.
왕소군의 교화에 힘입은 덕택으로 흉노와 한나라는 60년 넘게 전쟁 없이 화목하게 지냈다고 한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왕소군을 생각하며 쓴시
昭君怨 (소군원) 왕소군의 원망
漢道初全盛 한나라가 처음에는 융성해
朝廷足武臣 조정에 무신도 넘쳐났건만
何須薄命妾 어찌하여 박명한 첩이
辛苦遠和親 괴로운 화친길을 가는가
掩涕辭丹鳳 흐르는 눈물 가리고 단봉성 떠나
銜悲向白龍 슬픔 삼키며 백룡대로 가네
單于浪驚喜 선우는 놀라 그저 기뻐하지만
無復舊時容 예전의 낯빛을 다시 찾을 길은 없구나
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에는 꽃이 없으니
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아
自然衣帶緩 자연히 허리띠가 헐렁해지는데
非是爲腰身 이는 가는 허리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네
범박산 등산로에 진달래가 이렇게 피었는지도 모르고 아파트 화단에 핀 매화에만 마음을 주면서
동산에 핀 진달래는 생각도하지 않았는데 꽃샘추위속을 만발한채 피어 있다.
춥기는 했지만 일출의 눈 부신 햇살 물드는 산길에 진달래를 보는 즐거움이 기분좋았던 아침 걸음이었다.
바쁘게 돌아와 아침 그 길의 여운으로 기분좋게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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