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좋은 날
도량발호/跳(뛸도)梁(들보량)跋(밟을발)扈(뒤따를호,넓을호,창궐할호) 본문
跳(뛸도)梁(들보량)跋(밟을발)扈(뒤따를호,넓을호,창궐할호)
교수신문은 2001년부터 매년 전국 대학교수 대상 설문조사를
통해 올해의 사자성어를 뽑아 발표했다고 한다.
그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우연히 보니 나름의
의미가 있어 보여서 옮겨본다.
교수신문 올해의 사자성어는 도량발호(跳梁跋扈)라고한다.
한마디고 권력가지고 지 멋대로 날뛰는 것을 말한다.
도량이란 말은 장자의 소요유편에서 살쾡이가 작은 짐승을
잡아먹으려 (東西跳梁)동으로 서로 높고 낮은 대를 가리지 않고
날뛰는 장면에서 나온다. 그러다 그물과 덪에 걸려 죽기도 한다는 내용이다.
발호는 한나라 때 외척이었던 양기가 하도 지랄해서 물고기가 통발을
뛰어 넘으려고 할 때처럼 발광한다고 해서 발호장군이라 했다는 대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지난해 사자성어는 見利忘義였다고 한다.
이익 앞에서는 의리고 뭐고 없다는 뜻이다.
한해 더 가보면 過而不改였다 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상하게도 교수신문의 올해의 사자성어만 봐도 지금 정부의
오늘이 딱 맞아떨어진다.
내용과 관계는 없지만 재미있는 장자이야기
跳梁이란 단어가 나오는 장자의 추수편을 옮겨본다.
장자 제 17편 추수(가을에 난 큰 홍수) 제5장 公孫龍이 魏의 公子 牟에게 물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先王의 道를 배우고 자라서는 仁義의 행위에 밝게 되었습니다.
사물의 同과 異를 조화시키거나 돌의 굳은 것과 흰 것을 변별시키고, 세상에서 흔히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그렇다고 하고 세상에서 흔히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하여 많은 학자들의 지식을 곤혹스럽게 하고 뭇사람들의 변론을 궁지에 몰아넣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莊子의 말을 듣고는 멍해진 채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어 버렸습니다.
알 수 없군요.
나의 議論이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나의 지식이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인가요?
지금 나는 입도 벌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감히 묻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公子 牟는 팔뚝을 안석에 기댄 채 한숨을 깊이 쉬고는 하늘을 우러러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는 저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는가.
그 개구리는 동해 바다에 사는 자라에게 이렇게 말했다네.
‘아 즐겁구나.
(吾는 跳梁乎井幹之上하다가 入休乎缺甃之崖하야)
나는 우물 밖으로 튀어나와서는 우물 난간 위에서 깡충 뛰놀다가 우물 안으로 들어와서는 깨어진 벽돌 끝에서 쉬곤 한다.
물에 들어가서는 두 겨드랑이를 물에 찰싹 붙인 채 턱을 지탱하고 진흙을 찰 때는 발이 빠져 발등까지 잠겨 버리지.
장구벌레와 게와 올챙이를 두루 돌아봄에 나만 한 것이 없다네.
게다가 구덩이 물을 온통 독점하며 우물 안의 즐거움을 내 멋대로 한다는 것, 이 또한 최고일세.
그대도 이따금 와서 들어와 보지 아니하겠는가.’
동해의 자라는 〈그 말을 듣고 우물 속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왼발이 채 들어가기 전에 오른쪽 무릎이 벌써 우물에 꽉 끼여버렸다네.
그래서 망설이다 뒤로 물러나서는 개구리에게 바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네.
‘대저 바다는 천리의 넓이를 가지고도 그 크기를 표현할 수 없고 천 길의 높이로도 그 깊이를 다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夏의 禹임금 때에는 10년 동안에 아홉 번이나 홍수가 났지만 그래도 바닷물이 더 불어나지는 않았지.
또 殷의 湯임금 때에는 8년 동안에 일곱 번이나 가뭄이 들었지만 그래도 바닷가의 水位가 더 내려가는 일은 없었다네.
시간의 長短에 좌우되는 일도 없고 降雨量의 多少로 물이 增減되지 않는 것, 이것이 또한 동해의 커다란 즐거움이라네.’
우물 안 개구리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고 너무 당황해서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어버렸다네.”
“게다가 〈그대가〉 是와 非를 구별할 만한 知力도 가지고 있지 못한 주제에 莊子의 말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는 마치 모기에게 山을 짊어지게 한다거나 노래기에게 黃河를 건너게 하는 것과 같아서 감당할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네.
게다가 또한 根源的이고 靈妙한 철학을 논할 만한 지혜도 없는 주제에 일시적인 利로움에 自己滿足하는 자는 저 우물 안의 개구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한 저 莊子는 이제 땅속의 黃泉에까지 발을 들여놓고 하늘 끝 大皇에까지 오르려 하고 있네.
남쪽도 북쪽도 없이 거침없이 사방팔방으로 자기를 해방하여 짐작할 수도 없는 深遠한 경지에 沈潛하고, 동쪽도 서쪽도 없이 幽玄한 冥合의 경지로부터 시작해서 自由無碍로 소통하는 大道로 돌아가는 사람이네.
그런데 자네는 정신없이 자질구레한 지혜 분별로 그를 찾으려 하고 쓸모없는 변론으로 그를 잡으려 하고 있네.
이것은 다만 가느다란 대롱구멍으로 하늘을 엿보고 송곳을 땅에 꽂고 大地의 깊이를 측량하려는 짓이니 참으로 작은 소견이 아니겠는가.
자네는 어서 돌아가게.
또 자네도 저 壽陵의 젊은이가 〈趙나라 서울〉 邯鄲에 가서 大都市風 걸음걸이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겠지.
〈이 젊은이는〉 대도시풍 걸음걸이를 미처 배우기도 전에 또 그 옛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렸으므로 결국에 오직 기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하네.
이제 그대도 얼른 여기를 떠나지 않으면 〈장자의 철학을 體得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대 자신의 지금까지의 지식도 잊어버리고 그대 자신의 學業마저도 잃어버리고 말 것일세.”
公孫龍은 열린 입이 닫혀지지도 않고 올라간 혀를 내려오게 하지도 못한 채 이윽고 뒤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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